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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수이(적수) 대폭포 전경. 츠수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꼽힌다. /사진=박정웅 기자 |
가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구이저우는 지금 한창 여유롭다. 척박한 농사환경과 불편한 교통이 불러온 가난의 뒷마당에 장엄한 자연과 때묻지 않은 사람이 보존된 덕분이다. 시간을 비껴간 구이저우는 발길 닿는 곳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중국의 새로운 관광지(국가급풍경명승구)로 개발이 한창인 구이저우, 어쩌면 이름처럼 귀한 풍경을 몰래 아껴두고 봤으면 하는 바람도 간절하다.
구이저우의 젓줄은 츠수이허(赤水河)다. 양쯔강(長江)의 중상류 지류인 츠수이허는 이름처럼 붉다. 세계자연유산인 퇴적층 단하(丹霞) 지형이 빚어낸 협곡과 폭포, 습지가 츠수이(赤水)의 곳곳에 숨어 있다. 또 붉은 츠수이는 1만2000㎞ 대장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쓰촨(四川)과 충칭(中慶)의 경계에 있어 사람들이 드나들며 생긴 옛 이야기도 많다. 자연과 인문이 엮어낸 츠수이는 그래서 구이저우 여행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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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구 풍경구의 대나무숲 트레일. 시원한 대숲을 가볍게 걷는 아기자기한 트레일이 인상적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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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암 주상대폭포. 병풍처럼 둘러싼 단하지형이 선계를 옮겨놓은 듯 대자연을 연출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
◆시원한 대숲, 연이은 폭포는 청량감을 더하네
츠수이의 풍경구는 크게 사동구, 적수대폭포, 불광암으로 분류된다. 먼저 시원한 대숲을 가볍게 걸어보자. 아열대성 기후를 간직한 츠수이는 대숲이 장관이다. 대나무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한적한 트레일이 인상적이다. 온 산이 대나무 천지여서 대나무바다, 주하이(竹海)로 불린다. 한해 600만그루의 대나무를 잘라내 대통밥 등의 용도로 사용하니 규모를 가늠할 수 없다. 주하이국가삼림공원은 햇빛이 지면까지 닿지 않을 정도로 대나무가 빼곡하다. 느릿느릿 걸어보자. 대숲의 시원함은 폭포에서 청량감이 배로 뛴다. 사동구(四洞溝) 풍경구다.
동(洞)은 폭포를 뜻하는데 수렴동, 월량담, 비와암, 백룡담 등 4개의 폭포를 가리켜 사동구라 한다. 대숲을 따라 수렴동서 백룡담까진 2㎞ 남짓이다. 이 중 백룡담폭포가 높이 60m, 폭 23m로 가장 크다. 또 비와암(飛蛙巖)은 폭포 가운데 개구리를 닮은 바위가 재미있다. 마치 폭포를 단숨에 건너뛰려는 자세다.
사동구의 폭포가 아기자기하다면 적수대폭포(赤水大瀑布)는 이름처럼 크다. 사동구에서 차량으로 1시간이면 적수대폭포를 만난다. 단하지형의 협곡에 있어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인근에는 다리품을 덜 엘리베이터가 있다. 물론 유료다. 대폭포를 크게 맞이할 요량이라면 걷는 것을 추천한다. 계단길을 걷다 보면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에 폭포의 생김새나 크기가 자못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적수대폭포다. 도착 전까지 비가 내린 탓인지 쏟아지는 물도 이를 받아주는 물도 온통 붉다. 츠수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꼽힌다. 높이와 폭이 길고 넓어 십장동(十丈洞)이라고도 불린다. 높이 76m, 폭 81m로 양쯔강 유역에선 황과수폭포 다음으로 크다. 황과수폭포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데 개발을 통해 폭포 수위가 인공적으로 조절된다. 반면 적수대폭포는 온전한 자연의 것이라 가치가 더 크다.
단하지형의 또 다른 폭포가 있다. 높이 261m, 폭 40m의 불광암(佛光岩) 주상대폭포다. 사동구의 것이 꼬마였고 적수대폭포가 젊은이였다면 이것은 꺽다리 장수처럼 보인다. 선계가 따로 없다. 높은 낙차로 인해 물보라가 넓게 퍼져 이따금 무지개를 연출한다. 포말을 뒤집어 쓴 채 협곡을 굽어보면 지나온 길이 아득하다. 비처럼 흩날리는 물보라에 옷이 흠뻑 젖다 보니 폭포수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이가 많지 않아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
불광암은 세계 단하지형의 으뜸으로 꼽힌다. 높이 360m, 폭 1000m의 대규모 절리대로서 자연 본연의 거대한 병풍이다. 이름도 거룩해 부처의 후광을 닮았다. 주상대폭포와 불광암, 그리고 석가모니의 다섯손가락을 형상화한 오주봉(五柱峰)은 한참을 봐도 물리지 않는 풍경이다. 쥐라기와 백악기에 형성된 불광암을 오르는 길에는 공룡시대의 양치식물이 지천이다. 천연기념물과 같은 것이니 눈으로만 공룡시대를 만끽하자. 트레일 초입에는 전통복 차림을 한 묘족의 아낙네가 선계의 시작을 알린다.
협곡, 폭포, 삼림 등 단하지형의 자연경관을 둘러본 후 격동의 역사를 돌아본다. 전통마을인 병안고진(丙安古鎭)이 츠수이를 방패삼아 절벽에 똬리를 틀었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려면 출렁다리의 아찔함은 감수하자. 병안고진은 1935년 홍군의 대장정과 관련이 깊다. 내륙으로 쫓기던 홍군은 이곳 츠수이에서 준의회의를 열고 대장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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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야오바고진. 차 한 잔의 여유가 있는, 중국인관광객도 드문 곳이다.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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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수이허 비탈면에 빼곡히 늘어선 선시장유 장 옹기들. /사진=박정웅 기자 |
◆과거로 떠나는 감춰진 곳으로의 시간여행
츠수이를 건너면 행정구역이 쓰촨성으로 바뀐다. 츠수이시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자리 잡은 쓰촨의 옛 마을에는 시간이 멈춰있다. 루주시 야오바고진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자. 야오바고진은 1000년 전 구이저우성의 소금과 쓰촨성의 차를 교역했던 곳이다. 최근에는 국가 4A급 전통마을로 지정됐다. 중국인관광객만 간혹 눈에 띄는 감춰진 여행지다.
야오바고진에는 차 한잔의 여유가 있다. 어딘가에서 협객이 금방 뛰쳐나올 것처럼 옛 모습을 간직한 청대 무인의 고택에서 시름을 내려놔도 좋다. 차나 마작 따위를 한가롭게 즐기던 청대로 돌아가자. 마을은 중앙의 통로 하나로 연결되고 그 길이가 짧다. 홀로 나섰다가 길 잃을 걱정이 없다.
간식거리를 찾는다면 쌀로 만든 두부가 있다. 쌀로 만들었다고 해 고개가 갸웃거려지나 어쨌든 홍탕을 뿌려먹는 미두부(米豆腐)가 특식이다. 종이에 기름을 먹여 만든 전통 우산인 유지산보(油紙傘補)로 멋도 부린다. 이곳의 종이우산은 중국무형문화재다.
야오바고진 가까운 곳에 간장 제조장인 선시장유(先市醬油)가 있다. 마을 초입부터 단내가 낮게 깔려있다. 1893년부터 간장 제조의 전통을 이어온 선시장유는 국가급무형문화유산이다. 마치 우리의 종갓집을 연상케 한다. 붉은 츠수이를 배경으로 옹기가 옹기종기 빼곡하게 들어찼다. 전통가옥 곳곳에는 간장 제조에 쓰였던 도구며 조리기구, 가마, 침대가 널려 있다. 살아있는 생활사박물관이다. 다만 선시장유는 사유지라 개인 방문객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단체와 외국인관광객에게만 문을 여는데 예약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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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륭의 세계자연유산인 천생삼교. 석회암으로 구성된 카르스트 절벽이 웅장하다.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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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산을 자연무대로 삼은 장이머우 감독의 <인상무륭>. 협곡의 거센 물살과 싸우며 배를 끄는 첸푸의 고단한 삶을 다뤘다. /사진=박정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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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도가 인상적인 무륭의 용수협지붕. /사진=박정웅 기자 |
◆대자연에 녹아내린 삶의 무게
중국의 4대 직할시인 충칭으로 향한다. 충칭시 무릉(武陵)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인상(印象)시리즈 마지막편인 <인상무릉>(印象武陵)이 유명하다. 또 세계자연유산인 카르스트 지형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모두 국가 5A급 관광지이자 국가삼림공원인 선녀산(仙女山)이 그 배경이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거장 장이머우는 빛과 소리, 그래픽 등을 결합한 입체적인 퍼포먼스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장식했다. 화려한 퍼포먼스는 인상시리즈로 향하는데 마지막 작품이 바로 무릉인상이다. 무릉인상은 협곡의 거친 물살을 헤치며 배를 끄는 토가족 첸푸(船夫)의 애환을 담았다. 첸푸들은 200년 전 협곡에 동력선이 등장할 때까지 밧줄에 삶을 매달았다. 첸푸는 밧줄에 옷이 쓸려 수장되거나 이를 피하려 알몸으로 배를 끌었다. 가난한 탓에 딸을 또 다른 첸푸에게 시집을 보냈다. 굶주린 배를 채우려 버려지는 소 내장 따위를 함께 삶아먹었다. 그것이 바로 훠궈(샤브샤브)의 유래다. 인상무릉은 첸푸와 그의 가족사를 담은 감동적인 종합공연예술이다.
선녀산은 중국의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이다. 관광지 중 천생삼교(天生三校)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엘리베이터 맞은편에는 높이 280m의 스카이워크(유리전망대)가 산정에 아찔하게 걸쳐있다. 천생삼교는 하늘이 만들어낸 3개의 다리(천룡교, 청룡교, 흑룡교)로 웅장한 절경이 압권이다. 지질전문가들은 ‘지구의 유산’ 또는 ‘세계의 기적’으로 부르며 천생삼교의 지질적 가치를 치켜세운다.
또 다른 카르스트 세계자연유산이 있다. 용수협지붕이다. 천생삼교에 비해 스펙터클한 멋은 덜하지만 좁은 협곡을 따라 내려가는 잔도 트레킹의 재미가 쏠쏠하다. 깎아지른 절벽에 말뚝을 박아 만든 외길 ‘잔도’의 전체 길이는 5㎞ 이상이지만 보존을 위해 2㎞ 남짓만 개방됐다. 좁은 잔도에서 뺀 진땀은 80m 높이의 은하폭포 아래에서 식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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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의 홍애동 야경. /사진=박정웅 기자 |
◆츠수이 여행팁
충칭 제3공항이 지난 9월 1일 개항해 국적기의 항공 접근성이 더욱 좋아졌다. 충칭은 티벳 등 서부지역과 가까워 검색 절차가 까다로우므로 수하물 등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 좋다. 적수는 내륙 산악지형에 있어 관광지 개발이 한창이다. 앞서 고속도로 등 교통 인프라가 완비돼 지역간 이동이 편리하다.
협곡, 폭포 등 자연경관을 관람할 때는 가벼운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신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유의하자. 또 폭포 관람 시 우비나 우산, 여벌의 옷을 챙기는 것이 좋다. 인상무륭 관람 등 선녀산을 찾을 때는 도심 온도보다 10도 낮으므로 별도의 겉옷을 준비하자.
음식의 경우 현지식은 인근의 사천성 덕택에 우리 입맛과 어울린다. 명주로는 마오타이주, 루주 등이 있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은 새로 개발한 관광지답게 현대적이다. 다만 화장지 등 비품이 없는 경우가 있으므로 위생용품을 별도로 챙기는 것이 좋다. 주요 관광지에는 한국어 안내판이 있어 편하다. 시간이 있다면 충칭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홍애동 야경이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07호·제5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