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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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강모씨는 카드결제단말기(POS)만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계약서에 명시된 거래내용과 달리 수개월째 환급금액이 입금되지 않아서다. 피해자는 강씨뿐만이 아니다.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한 전국 사업자만 수십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별도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송 등 법적조치를 논의 중이다. 강씨를 비롯해 피해자 모임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0개월째 ‘묵묵부답’… 수백만원 피해 호소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1월 새로운 매장을 오픈한 강씨의 어머니에게 밴(VAN)대리점업체인 우리아이엔씨(우리inc) 측에서 자신의 POS기기를 임대해 사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매달 결제승인 건수가 50건을 넘으면 3년 동안 무료 임대가 가능하다고 제안한 것. 150만원이 넘는 POS기기를 3년 할부로 구입하면 매달 4만4000원을 내야 하는데 결제승인 건수 등 조건에 부합하면 이 금액을 전액 우리아이엔씨 측에서 현금으로 환급해준다는 것이 우리아이엔씨 측의 설명이었다. 무료로 POS기기를 임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씨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런데 올 9월까지 단 한번도 환급금액이 입금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우리아이엔씨가 어떤 회사인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다 강씨는 깜짝 놀랐다. 강씨처럼 피해를 봤다며 포털에 글을 올린 사업주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 이들은 지난 3월 별도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피해자를 모집한 뒤 법적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씨가 돌려받지 못한 금액은 50만원 남짓. 그런데 커뮤니티 확인결과 이런 식으로 피해를 당했다며 커뮤니티에 가입한 가입자가 100명에 달했다. 환급받지 못한 금액은 개인마다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다양했다.

강씨는 “현재 환급받지 못한 사업자 가운데 금액이 250만원을 넘는 사람이 2명이나 있다”며 “이는 명백한 사기”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피해자는 “현재 커뮤니티 가입자가 100명인데 인터넷을 못하는 어르신까지 합하면 피해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우리아이엔씨 측은 “일시적인 경영난으로 환급금 지급이 제때 안됐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환급금은 모두 지급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피해자들은 POS기기 구입방식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밴대리점 자체 할부가 아닌 캐피털 대출로 POS기기 구매가 이뤄졌다. 이를테면 우리아이엔씨에서 POS기기를 구입하려면 사업자 명의로 캐피탈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만약 대금을 제때 내지 못하면 캐피털사에 연체로 등록돼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연체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피해 가맹점주들은 계약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아이엔씨 측은 계약해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리아이엔씨가 POS기기를 사업자에게 사실상 무료로 임대해준 건 결제승인과 전표매입 등으로 수익을 보전하고 있어서다. 결제승인 건수 기준을 매달 50건 이상으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을 해지하면 우리아이엔씨는 POS기기값을 그대로 물어야 하고 결제승인·전표매입 수수료도 챙기지 못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우리아이엔씨 관계자는 “처음엔 피해를 호소하는 분이 80~90명에 달했는데 지금은 모두 환급해주고 남은 사람은 20명 안팎”이라며 “현재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분들만 (민원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오해에서 생긴 일인 만큼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실제 <머니S>가 취재에 들어간 이후 상당수 사업자가 약속한 금액을 환급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우리아이엔씨 측을 믿지 못하겠다며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사업자도 있다. 일시적으로 밀린 돈을 환급받았지만 같은 상황이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몰라 불안하다는 게 이유다.

한 사업자는 “POS기기에 문제가 발생해 연락을 취해도 전화연결이 잘 안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루 동안 장사해 먹고 사는 우리에게 POS기기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며 “앞으로 최소 1~2년 동안 POS기기를 계속 이용해야 하는데 사후관리도 제때 이뤄지지 않고 환급금도 제대로 안 들어온다면 어떻게 그 회사의 제품을 믿고 쓰겠느냐. 지금은 규모가 크고 믿을 만한 밴대리점 POS기기로 교체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소연했다.


피해자가 제공한 POS 임대차 계약서. 결제승인 건수 50건을 넘으면 4만4000원을 환급해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피해자가 제공한 POS 임대차 계약서. 결제승인 건수 50건을 넘으면 4만4000원을 환급해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반복되는 미지급사태 원인은?
POS기기 환급금 미납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 초에도 서울에서 사업하는 A씨가 POS기기 환급금 미지급을 두고 <머니S>에 피해를 호소한 바 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수명에 불과하고 피해금액도 300만원 안팎으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또 취재가 들어간 이후 밴대리점업체가 모두 환급해줘 해당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해와 2005년에도 비슷한 사연으로 제보가 접수된 바 있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는 걸까. 업계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정부가 카드수수료를 인하하면서 카드사는 물론 협력사인 밴사업자들도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밴사 한곳이 관리하는 전국 가맹점주는 수천에서 수만여곳에 이른다. POS기기를 얼마나 많이 파느냐에 따라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한 밴대리점 관계자는 “카드수수료율 인하정책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관리한 곳만 1만개에 달했고 직원도 100명이 넘었다”며 “하지만 카드수수료가 점진적으로 인하되고 2015년부터 의무적으로 POS기기도 IC POS 단말기로 교체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돼 현재 남은 직원은 10명도 채 안된다. 카드사의 수익난이 밴사엔 생존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답답해했다.

즉 정부가 카드수수료 인하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부작용이 영세상인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카드수수료 인하정책이 계속되면 또 다른 방식의 애꿎은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며 “카드사와 밴사, 밴대리점이 상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07호·제5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