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그림=이지혜 디자이너
아동학대. /그림=이지혜 디자이너

둘째아이를 출산한 지 나흘 만의 일이다. 병원을 퇴원해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이른 아침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경찰관 두명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접수돼 방문했습니다. 집안을 살펴봐도 됩니까?"

"예…. 들어오세요. 그런데 아동학대라고요?"


"어린아이들이 번갈아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요. 주민들이 아이 안전을 걱정해서 신고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낯설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우리 부부는 어쩔 줄을 몰랐다. 1~2분 흘렀을까. 복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운 사이 경찰관들은 집안을 빠르게 둘러본 뒤 "실례했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아동보호와 관련한 법이 잘 지켜지는 북미나 유럽에서는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난다고 한다. 아동학대는 단지 폭력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잘못된 훈육이나 방임 등을 포함한다. 만약 아동학대가 의심되는데도 이를 신고하지 않고 묵인한다면 그 역시 범죄가 되는 것이다.


평소 아동학대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하던 우리 두 사람은 아동학대범으로 의심받은 데 대해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시간이 더 지나서는 우리가 처한 이 전쟁같은 육아 현실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한가지 아쉽고 의문이 드는 점도 있었다. 최근 뉴스에 나온 아동폭력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 가해자는 친부모나 양부모다. 겉으로는 평범해보이는 부모라도 아동학대 여부를 조사하는 상황이라면 단순한 확인에서 그칠 게 아니라 아이 상태와 보호자와의 관계 등을 좀 더 주의깊게 살펴봐야 하지 않았을까.

전문가들은 아동범죄를 막으려면 주위의 관심과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진국이라도 아동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신고와 강력한 처벌로 인해 피해아동이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적다는 것.

반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아동범죄 사례를 보면 주변 사람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가 방치되다가 사망한 경우가 많다. 피해아동이 뒤늦게 발견됐을 때는 몸이 상처와 멍투성이거나 정상체격보다 심각하게 야윈 상태여서 그런 모습을 봐야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찢어놓았다. 심지어 신고가 이뤄졌음에도 가정 내의 일이라는 이유로 후속조치가 없어서 비극적 결말을 맞았던 사건도 있다.

아이의 인권을 지키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지만 사회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한국정부가 채택한 유엔의 아동권리협약도 '모든 아동은 재산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면 관심을 갖고 신고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웃과의 마찰이나 얼굴 붉힐 일이 두려워 주저하지만 신고를 당한 입장이라도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건 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