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업계가 폭풍성장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는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로 홍역을 치른 환경부가 날선 잣대를 들이대자 그동안 업계에서 묵인되던 고름이 터져 나왔다.

지난 11월9일 환경부는 BMW그룹코리아·메르세데스-벤츠·포르쉐 등 독일 프리미엄브랜드 3사에 과징금 703억원을 부과했다. 배출가스 시험성적서 위·변조, 배출가스·소음 부품변경 등 제품인증과 관련된 불법행위가 적발돼 이 같은 처분을 내린 것.


김정환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이 배출가스 시험성적서 위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종민 기자
김정환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이 배출가스 시험성적서 위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종민 기자

2015년 불거진 폭스바겐·아우디 배출가스 조작사건, 이른바 ‘디젤게이트’ 사태 이후 인증받은 차종엔 문제가 없다. 사태 이후 관련부서가 조직을 개편, 인력을 보강하고 내부 프로세스를 개선해서다. 반대로 해석하면 업체가 수입차시장이 폭풍성장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절차상 허점을 파고들어 이용한 셈이다.


◆'수요폭증·판매경쟁' 후유증

2015년은 수입차업계의 경쟁이 극에 달한 시기다. 2010년 연간판매량 9만여대에 불과하던 것이 2015년 24만3900대로 3배 이상 성장했다. 당시 업체들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물량확보에 혈안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타이밍에 차를 전달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세일즈에 집중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또 해외에서 차를 원하는 만큼 가져오더라도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수입사는 차를 배에 실어 국내에 들여오는데 인증이 끝나야 통관과 판매가 가능하다. 수입차 인증은 환경부의 배출가스 및 소음인증, 산업부 연비인증, 국토교통부의 안전기준 자기인증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인증이 오래 걸리면 통관절차가 늦어지고 제품의 출시 지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행처럼 서류 위·변조를 해왔다는 게 환경부와 수입차업계의 설명이다.


폭풍성장 '부메랑' 맞은 수입차

이에 BMW그룹코리아는 7개 모델에 자발적 판매중단을 발표하며 서류를 조작한 게 아닌 ‘오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과거 수입절차를 위해 제출한 서류에서 미비점이 발견된 것일 뿐 차 자체의 운행이나 안전과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약 20만대 중 일부가 인증에 앞서 수입통관이 이뤄진 것과 변경인증 또는 변경보고가 누락된 채 수입통관이 이뤄진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입프로세스와 인증프로세스의 조율이 원활하지 못한 결과였고 부품변경도 고의로 사실을 은폐하려던 건 아니라는 입장. 나아가 인증시험성적서를 위·변조한 사실이 없어 환경부의 인증취소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두 회사는 프로세스의 문제였음을 인정했지만 고의성은 없었다고 거듭 밝혔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들 업체의 고의성 여부를 떠나 위반사실 자체에 주목한다. 이는 수입차업계에서 볼멘소리를 하는 변경인증건과 맞물린다. 앞서 일부 업체는 우리나라의 인증절차와 해석이 해외와 차이가 커서 본사의 협력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는 “부품성능을 개선하더라도 다른 부품에 영향을 주는 만큼 최초인증 못지않게 중요한 게 변경인증”이라며 “이번 사안은 신고절차 자체가 주요 쟁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더라도 정해진 법규와 절차가 있는 만큼 이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대기환경보전법의 제작차 인증법 제48조(제작차에 대한 인증)에는 배출가스보증기간 동안 허용기간에 맞게 배출가스가 유지된다는 인증을 받아야 하며 중요한 내용을 바꾸려면 변경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됐다.

◆서류조작 파장 어디까지?

지난해 11월 환경부는 15개 수입사의 인증서류 위·변조 여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서울세관이 BMW, 벤츠, 포르쉐 등 3개 수입사를 대상으로 압수수색 등 추가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증서류 위·변조 및 변경인증 미이행 의심사례를 발견했다. 환경부 교통환경연구소에서는 기술적 검토 결과 법위반 사항을 확인했고 이에 서울세관은 3사 관계자를 부정수입 등 관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지난 11월8일 환경부에 상세내역을 통보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BMW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제작차인증으로 국내에 판매한 28개 차종 8만1483대에 대한 배출가스 시험성적서를 위·변조했다. 국내 인증조건에 맞추기 위해 경유차 10종, 휘발유차 18종을 실제 시험한 차종 또는 시험시설과 다르게 기재했다. 또 일부는 시험 결과 값을 임의로 낮춰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품 임의변경도 적발됐다. BMW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1개 차종의 배출가스 관련부품을 인증받은 것과 다른 부품으로 제작한 7781대를 수입·판매했다. 벤츠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수입·판매한 21개 차종의 배출가스 또는 소음관련부품을 인증받은 것과 다른 부품으로 제작해 8246대를 들여와 팔았다. 포르쉐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에 수입해 판매한 마칸 S 등 5개 차종에 배출가스 관련부품을 인증받은 것과 다른 것으로 제작, 국내에서 787대를 판매했다.

정부는 수입차업계에서 인증조작 사태로 불거진 서류관련 불만을 개선하기 위해 내년 초 시스템의 전산화작업을 거쳐 서류확인의 편의를 더할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업체들이 말하는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인증서류는 그래프 따위의 첨부자료가 대부분”이라며 “전산화작업은 인증서류를 간소화하는 게 아니라 인증서류가 잘못 쓰였거나 중복된 점을 찾으려는 목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수입차업계에서는 이번 인증사태가 대규모 리콜이나 판매중단으로 이어지지 않아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악의적인 위·변조사례가 아니라 절차상 실수였을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환경부는 매년 결함확인 절차를 거칠 예정이어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대규모 리콜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업계의 기대와 달리 앞으로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6호(2017년 11월29일~12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