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 시장에 대해 메스를 꺼내 들었다. 이들 시장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곱버스(곱하기+인버스) ETF 같은 고위험 상품에 개미(개인)투자자가 대거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업계는 당장의 투기 광풍은 잠재울 수 있겠지만 유동성이 크게 줄면서 과거 ELW(주식워런트증권) 사태처럼 시장이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
/그래픽=머니S 김은옥 기자. |
◆ 투기판 변질 원유 선물 ETN 시장… 투기수요 잡는다
금융당국이 변동성 장세에 투기 수요가 몰린 ETF·ETN 시장에 강력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시장 건전화 방안을 통해 고위험 레버리지 ETF와 ETN에 투자하려는 개인 투자자에 대해 증권사에 1000만원의 기본예탁금을 내고 사전 온라인 교육도 받도록 했다. 또 이들 상품은 빚투(빚내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신용거래융자 대상에서도 제외키로 했다.
방안은 시장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기본예탁금 등 자본시장 법령 개정과 전산 시스템 개발이 필요한 과제는 9월부터 시행된다. 금융당국 차원에서 업계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다고 밝힌 만큼 향후 완화될 규제가 나올 가능성도 열려있다. 업계에서는 전문 투자자를 제외한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상품개요 및 특성, 거래방법, 파생형 ETP(ETF·ETN 통합지칭) 내재위험 등의 내용을 담은 방안의 사전 온라인 교육 의무화 방안을 놓고 과도한 투기 수요를 위축시키는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상품의 투자위험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고위험상품에 뛰어드는 투기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고수익을 노린 원유선물 ETF·ETN 상품에 묻지마식 투기 수요가 몰리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 원유선물 ETF·ETN 상품의 일 평균 거래대금은 지난 20일 기준 2667억원으로 지난해(62억원)에 비해 43배나 급증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ETN 활동계좌 수는 1월 말 2만8000개에서 4월 말 23만8000개로 크게 늘었다.
![]() |
/사진=머니S |
원유선물 ETN시장이 투기판으로 변질되면서 거래정지도 반복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레버리지WT원유ETN, QV레버리지WTI원유ETN, 신한레버리지WTI원유ETN, 미래에셋레버리지원유선물혼합 등 4개 종목은 지난 18일 단일가매매 방식으로 거래가 재개됐으나 괴리율이 잡히지 않아 3일간 거래가 정지됐다. 이들 레버리지 ETN 4종은 괴리율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삼성레버리지ETN의 괴리율은 160%까지 치솟았고 QV레버리지ETN(154%), 신한레버리지ETN(85%), 미래레버리지원유선물혼합(56%) 등도 높은 괴리율을 기록했다.
지난 22일 거래가 재개된 원유 레버리지 ETN 3종이 또 다시 거래 정지를 맞았다.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은 괴리율 55.66%로 거래를 마쳤다.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은 47.63%,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은 52.33%의 괴리율로 집계됐다.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만 가까스로 괴리율이 30%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거래 정지를 피했다. 여타 ETN도 괴리율이 이전보다 대폭 떨어져 조만간 정상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거래소는 단일가매매 방식에서 괴리율이 30% 이상으로 커질 경우 3거래일간 거래를 정지하는 방식으로 괴리율 대응 기준을 강화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원유 선물 관련 ETN들은 단일가매매 상태 하루 만에 3거래일간 거래가 추가 정지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높은 괴리율을 이유로 미래에셋 레버리지원유선물혼한 ETN이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 18일 금융위원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사가 ETN 조기 청산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 이와는 별도로 자진 청산 전 강제 상장폐지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 |
/사진=머니S |
◆ 투자자 진입 장벽 높아져… “ELW 꼴 될까”
증권업계는 1000만원의 기본 예탁금 제도 도입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기본 예탁금은 투자자가 금융상품을 거래하기 위해 계좌에 의무적으로 넣어야 하는 돈이다. 투자 손실에 대응할 자본 여력이 없는 투자자를 걸러내는 기능을 하는 데, 투자자 입장에선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셈이다. 현재 선물·옵션 1000만원과 주식워런트증권(ELW) 1500만원 거래 등에 도입돼 있다.
문제는 이번 규제가 2010년 ELW 시장 건전화 개선 방안과 닮아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5년 국내 도입된 ELW 시장은 거래 규모 기준 세계 2위에 오를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스캘퍼(초단타매매 거래자) 불공정거래 등을 막기 위해 예탁금(1500만원)을 설정하면서 크게 위축됐다. 2010년 약 43조원에 달했던 월 거래대금은 2012년 2조원대로 급감했다. 이 기간 하루 평균 거래대금도 1조원에서 1000억원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당장의 투기 광풍은 막겠지만 ELW 시장의 전철을 답습할 것이란 우려와 진입 규제가 없는 해외 레버리지 ETP상품으로 투자자들이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 창출을 위해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방향으로 투자 전략을 세울 수 있다”며 “ETF·ETN은 개인들도 기관 투자자처럼 다양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인데 기본 예탁금 설정으로 투자 진입이 제한될 경우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지영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투기성 ETP에 대한 감독 및 규제 강화는 적절한 방향이지만 특정 ETP(원유 등 파생상품 ETP)뿐 아니라 전반적인 레버리지 ETP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성장세가 예상되는 국내 ETF 시장을 위축시킴과 동시에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ETF 시장 이탈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당국의 방안에 다양한 ETN 출시 환경 조성 방안이 담긴점은 긍정적이란 목소리다. 방안은 코스닥150·KRX300 등 국내시장 대표지수의 ETN 출시를 허용하고 해외주식 직접 투자수요 흡수를 위해 투자자 외 해외주식 직접투자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개발이 가능하도록 ETN 기초지수 구성요건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해외 레버리지 ETP상품으로 눈길을 돌린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6호(2020년 5월26일~6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6호(2020년 5월26일~6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