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2회 의무휴업으로 문 닫은 대형마트/사진=뉴스1 DB
월2회 의무휴업으로 문 닫은 대형마트/사진=뉴스1 DB
장기 불황에 온라인 쇼핑의 성장세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유통업체 대부분은 전년대비 비용을 30~40% 삭감하고 구조조정까지 나선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에선 유통업계를 향한 규제의 고삐를 더욱 조인다. 사실상 대기업 유통 채널 전체에 의무휴업을 도입하자며 보다 강력한 규제 법안을 우후죽순 쏟아냈다. ‘유통산업발전법’이란 명칭과는 달리 지난 10년 동안 중첩된 규제로 유통산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유통 규제 법안만 20여개… 면세점까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따라 매월 2회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오전 0∼10시) 등의 규제를 받는다. 2010년 대형마트가 유통업 강자로 꼽히던 시절에 만들어진 이 법안은 이후 진화를 거듭했다. 19대 국회에서 65건, 20대에서 42건의 개정안이 각각 발의됐고 규제가 강화됐다.

21대 국회도 규제 강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발의된 유통 규제 관련 법안은 20여건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을 차지하는 유통법 개정안에는 복합쇼핑몰, 백화점, 아웃렛, 면세점, 전문점을 한 달에 두 번씩 문을 닫게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통법 개정안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계열사가 운영하거나 일정 면적 이상의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아웃렛, 면세점 등으로 의무휴업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추석과 설날은 반드시 의무휴업일로 지정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에는 대기업으로부터 상품을 받는 상품공급점이나 매출액 또는 자산총액 규모가 대규모 혹은 준대규모 점포에 준하는 기업, 프랜차이즈 체인사업들 역시 영업시간 제한 등 법적 규제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경우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이케아, 다이소 등도 대형마트와 같은 규제를 받게 된다.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도 비슷하다. 대규모 점포의 출점 제한 구역을 대폭 확대하고 일정 면적 이상의 복합쇼핑몰에 대해선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두자는 내용이 골자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유통규제법안 내용/그래픽=김은옥 기자
21대 국회에 발의된 유통규제법안 내용/그래픽=김은옥 기자
출점 관련 법안도 잇따랐다. 김정호 민주당 의원은 대규모 점포 등의 개설을 위해 필요한 행정 절차를 현행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고 대형 매장 출점 제한 구역을 의미하는 전통상업보존구역을 현행 1㎞에서 최대 20㎞까지 늘리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장섭 민주당 의원은 올해 11월23일자로 만료되는 전통상업보존구역 관련 전통시장 1㎞ 내 대형마트·SSM 출점 제한 존속 기한을 2025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대형마트에 대한 현행 규제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불황·코로나·규제… 유통업계 ‘삼중고’


대다수 유통법 개정안이 4·15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해 슈퍼여당이 된 민주당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업계는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히 복합쇼핑몰 규제 방안은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공동 정책 공약 1호라는 점에서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업계에선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유통가 전체에 연간 약 10조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은 주말 매출이 평일 대비 2배가량 많은데 격주로 휴업할 경우 입을 매출 타격이 반영된 수치다.

아울렛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사진은 롯데아울렛 기흥점/사진=김경은 기자
아울렛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사진은 롯데아울렛 기흥점/사진=김경은 기자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점포 내점객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를 강화한다면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다”며 “복합쇼핑몰 매장에 입점한 중소업체나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수·축산물 종사자도 수입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면세업계에선 이번 개정안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면세점 매출은 70%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나온다. 판매 품목도 명품 위주여서 골목상권이나 소상공인과는 접점이 없다. 사업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내놓은 탁상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형마트의 몰락… 업계 전반으로 번지나 


무엇보다 업계가 불안에 떠는 이유는 이미 대형마트의 몰락을 지켜봤기 때문. 대형마트 매출액은 의무휴업이 시작된 2012년부터 7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다. 2013년 7351억원이던 이마트 영업이익은 지난해 1506억원으로 5분의 1 토막 났다. 이마트는 지난해 창사 이래 첫 분기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규제가 시작된 지 10년, 대형마트 업계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롯데마트 점포 중 20~30%, 롯데슈퍼의 30~50%가 현재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롯데마트는 올해 총 16개 점포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홈플러스 역시 점포 매각을 통한 자산 유동화 작업에 나선 상황이다.

이는 자연스레 일자리 문제로 이어진다. 대형마트 점포당 직접 고용 인원은 약 200명, 협력업체 직원 등 간접 고용까지 합하면 500여명에 달한다. 실제로 2018년부터 대형마트 3사 매장 수가 감소세를 나타내면서 최근 2년 사이 3000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규제로 인한 출혈이 이토록 심각함에도 정작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는 지적이다. 여당이 규제 대상으로 지목한 복합쇼핑몰의 경우 입점업체의 70%가 자영업자 혹은 소상공인이다. 복합쇼핑몰을 규제하면서 소상공인 보호가 이뤄질 리가 없다.

소상공인도 대다수(81.7%)가 복합쇼핑몰 규제 강화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잠실 롯데월드몰, 신세계 스타필드하남, 현대백화점 판교 등 주요 복합쇼핑몰 3사에 입점한 소상공인 사업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유환익 한경연 상무는 “입점 소상공인의 매출과 고용에 상당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복합쇼핑몰 규제 법안 도입 논의는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