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일요일 영업일 안내문구가 걸려 있다/사진=뉴스1DB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일요일 영업일 안내문구가 걸려 있다/사진=뉴스1DB

헛물켜는 ‘유통발전법’, 규제의 착각


# 소비자가 대거 몰린 ‘대한민국 동행세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소비위축 타개를 위해 대대적으로 진행된 이 행사에서 대형마트는 지난달 28일과 이달 12일 두 차례나 문을 닫아야 했다. 한 달에 이틀씩 대형마트에 적용되는 의무 휴업일 규제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도 배제된 데다 소비 진작을 위한 행사인 만큼 한시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무휴업일인 이날 SSG닷컴 역시 이마트몰 상품을 배송하지 않았다. 대형마트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주문 배송 역시 의무휴업일에는 허용되지 않아서다.
# 마이너스 성장. 대형마트는 최근 3년간 폐점한 점포가 출점 점포 수보다 많다. 매년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려오던 롯데마트는 연내 16개 점포를 폐점할 예정이고 일부 대형마트와 백화점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매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 실적 악화가 주된 원인. 상황이 이런데도 21대 국회에선 올해 효력이 끝나는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관련 규제를 앞으로 5년간 더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나왔다. 전통시장으로부터 반경 1㎞ 내 대형마트 등 신규 점포 개설을 규제하는 현행법안을 5년 더 늘리겠다는 게 골자다.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을 채찍질하는 정부가 만들어낸 현주소다. 말이 발전법이지 골목상권과 중소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또 다른 규제만 내놓을 뿐 유통업계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에 적용하던 족쇄는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말로만 발전법… 유통업 가로막는 규제

유통 규제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유통법 개정을 기점으로 신규 출점이 막혔다. 전통시장 경계로부터 1㎞ 이내에는 백화점, 대형마트, 쇼핑센터 등의 새 점포를 여는 것이 금지됐다. 2년 뒤엔 의무휴업일(월 2회) 지정과 영업시간 규제(오전 0시부터 10시까지)가 생겼다. 유통법 규정에 따라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월 2일의 공휴일에 의무휴업해야 하고 심야시간대 영업도 할 수 없게 됐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등 지역 상권과의 상생 의무를 강제한다는 취지다.

결과는 어땠을까. 지난 10년동안 유통가 규제는 빠르게 몰아치는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여전히 10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유통법 개정안도 대부분 규제 확대에 맞춰져 있다. 대형마트에만 적용되던 의무휴업일을 복합쇼핑몰, 아웃렛, 면세점 등으로 넓혀 이들의 영업과 출점을 더 강하게 틀어막자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기 전에 현 시장 상황에 맞도록 기존 규제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실행 중인 유통 규제로 인한 효과가 기대 이하인 데다 새롭게 변화된 유통산업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대형마트, 전통시장 매출액 현황/그래픽=김은옥 기자
대형마트, 전통시장 매출액 현황/그래픽=김은옥 기자
◆전통시장도 못 살리고 내수 죽이고

전통시장도 웃지 못했다. 대형마트 영업일수를 제한하면 전통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빗나간 것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 매출액은 2012년 21조원에서 유통규제법안이 통과된 후 2013년 20조7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 기간 대형마트도 1% 안팎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소비는 전통시장 대신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2019년 기준 소매유통 매출액 중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8.7%에 불과한 반면 2015년 14% 수준이었던 온라인쇼핑 비중은 21.4%로 크게 뛰었다. 대형마트 규제로 인한 반사이익이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쇼핑을 향하고 있다는 방증.

소비자 역시 대형마트가 쉬는 날 전통시장을 이용하기보다는 온라인쇼핑을 이용하거나 다른 날로 구매를 미루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유통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위협적인 유통 업태로 대형마트를 꼽은 응답자는 17.5%에 그쳤고 온라인쇼핑은 43%에 달했다.

경동시장 전경/사진=장동규 기자
경동시장 전경/사진=장동규 기자
규제가 오히려 더 큰 손실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형마트 몰락이 가져올 후폭풍이다. 마트가 무너지면 해당 마트 종사자는 물론 마트와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협력사까지 동반 피해를 입을 수 있어서다. 지난해 마트 3사 기준 중소납품업체 수는 6800여개, 입점 소상공인 점포수는 6000여개에 달한다. 이들 역시 모두 정책적 보호 대상. 취지와 맞지 않은 또 다른 역차별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직도 큰 문제다. 대형마트 한 곳에서 약 400~500명의 고용이 창출된다는 점에서 마트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이 정도의 인원이 일자리를 잃는 셈이다.

◆온라인 쇼핑몰만 성장하는데 아직도 대형마트 규제

추가적인 ‘규제’로 유통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전문가들 지적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행 유통규제는 정략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목표 없이 도입된 문제점이 있다”며 “그동안의 효과도 전혀 실증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임영균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도 “유통정책이 소비자 후생 중심으로 설계돼야 함에도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보호하려는 취지가 너무 앞서 대형 유통 규제라는 카드를 쓴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소비가 침체된 상황에서 발전은커녕 규제에 막혀 현행 유지도 어렵다는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실제 대형마트 3사는 외형성장을 멈추고 구조조정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적 악화로 현금흐름이 막히면서 유동성 확보도 시급한 상황. 홈플러스는 3개 점포를 매각해 자산 유동화에 나섰고 롯데마트 역시 올해에만 부실 점포 16개점을 접기로 했다. 이마트도 지난해 서부산점 등 3개점을 폐점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나 SSM이 지역 상권을 흡수하고 소상공인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10년 전 사고방식이 다시 회자된다”며 “10년이면 강산이 바뀌고 오프라인의 몰락 속에 온라인 쇼핑몰이 공룡으로 성장했음에도 계속해서 대형마트만 규제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통산업을 유통 대기업과 소상공인 간의 대결구도로 접근하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쪽엔 ‘보호’, 한쪽엔 ‘규제’라는 딱지를 붙인 게 어느 한쪽도 웃지 못한 채 지금의 동반 몰락을 이끄는 주범이 됐다는 지적이다.

김설아 기자 [email protected]

오프라인 고꾸라지는데… 거꾸로 가는 정책



장기 불황에 온라인 쇼핑의 성장세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유통업체 대부분은 전년대비 비용을 30~40% 삭감하고 구조조정까지 나선 상황이다.

월2회 의무휴업으로 문 닫은 대형마트/사진=뉴스1 DB
월2회 의무휴업으로 문 닫은 대형마트/사진=뉴스1 DB
이런 와중에 정치권에선 유통업계를 향한 규제의 고삐를 더욱 조인다. 사실상 대기업 유통 채널 전체에 의무휴업을 도입하자며 보다 강력한 규제 법안을 우후죽순 쏟아냈다. ‘유통산업발전법’이란 명칭과는 달리 지난 10년 동안 중첩된 규제로 유통산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유통 규제 법안만 20여개… 면세점까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따라 매월 2회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오전 0∼10시) 등의 규제를 받는다. 2010년 대형마트가 유통업 강자로 꼽히던 시절에 만들어진 이 법안은 이후 진화를 거듭했다. 19대 국회에서 65건, 20대에서 42건의 개정안이 각각 발의됐고 규제가 강화됐다.

21대 국회도 규제 강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발의된 유통 규제 관련 법안은 20여건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을 차지하는 유통법 개정안에는 복합쇼핑몰, 백화점, 아웃렛, 면세점, 전문점을 한 달에 두 번씩 문을 닫게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통법 개정안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계열사가 운영하거나 일정 면적 이상의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아웃렛, 면세점 등으로 의무휴업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추석과 설날은 반드시 의무휴업일로 지정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에는 대기업으로부터 상품을 받는 상품공급점이나 매출액 또는 자산총액 규모가 대규모 혹은 준대규모 점포에 준하는 기업, 프랜차이즈 체인사업들 역시 영업시간 제한 등 법적 규제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경우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이케아, 다이소 등도 대형마트와 같은 규제를 받게 된다.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도 비슷하다. 대규모 점포의 출점 제한 구역을 대폭 확대하고 일정 면적 이상의 복합쇼핑몰에 대해선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두자는 내용이 골자다.

유통규제법안 주요 내용/그래픽=김은옥 기자
유통규제법안 주요 내용/그래픽=김은옥 기자
출점 관련 법안도 잇따랐다. 김정호 민주당 의원은 대규모 점포 등의 개설을 위해 필요한 행정 절차를 현행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고 대형 매장 출점 제한 구역을 의미하는 전통상업보존구역을 현행 1㎞에서 최대 20㎞까지 늘리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장섭 민주당 의원은 올해 11월23일자로 만료되는 전통상업보존구역 관련 전통시장 1㎞ 내 대형마트·SSM 출점 제한 존속 기한을 2025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대형마트에 대한 현행 규제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불황·코로나·규제… 유통업계 ‘삼중고’

대다수 유통법 개정안이 4·15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해 슈퍼여당이 된 민주당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업계는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히 복합쇼핑몰 규제 방안은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공동 정책 공약 1호라는 점에서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업계에선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유통가 전체에 연간 약 10조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은 주말 매출이 평일 대비 2배가량 많은데 격주로 휴업할 경우 입을 매출 타격이 반영된 수치다.

아울렛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_사진은 롯데아울렛 기흥점/사진=김경은 기자
아울렛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_사진은 롯데아울렛 기흥점/사진=김경은 기자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점포 내점객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를 강화한다면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다”며 “복합쇼핑몰 매장에 입점한 중소업체나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수·축산물 종사자도 수입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면세업계에선 이번 개정안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면세점 매출은 70%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나온다. 판매 품목도 명품 위주여서 골목상권이나 소상공인과는 접점이 없다. 사업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내놓은 탁상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형마트의 몰락… 업계 전반으로 번지나

무엇보다 업계가 불안에 떠는 이유는 이미 대형마트의 몰락을 지켜봤기 때문. 대형마트 매출액은 의무휴업이 시작된 2012년부터 7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다. 2013년 7351억원이던 이마트 영업이익은 지난해 1506억원으로 5분의 1 토막 났다. 이마트는 지난해 창사 이래 첫 분기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규제가 시작된 지 10년, 대형마트 업계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롯데마트 점포 중 20~30%, 롯데슈퍼의 30~50%가 현재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롯데마트는 올해 총 16개 점포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홈플러스 역시 점포 매각을 통한 자산 유동화 작업에 나선 상황이다.

이는 자연스레 일자리 문제로 이어진다. 대형마트 점포당 직접 고용 인원은 약 200명, 협력업체 직원 등 간접 고용까지 합하면 500여명에 달한다. 실제로 2018년부터 대형마트 3사 매장 수가 감소세를 나타내면서 최근 2년 사이 3000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규제로 인한 출혈이 이토록 심각함에도 정작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는 지적이다. 여당이 규제 대상으로 지목한 복합쇼핑몰의 경우 입점업체의 70%가 자영업자 혹은 소상공인이다. 복합쇼핑몰을 규제하면서 소상공인 보호가 이뤄질 리가 없다.

소상공인도 대다수(81.7%)가 복합쇼핑몰 규제 강화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잠실 롯데월드몰, 신세계 스타필드하남, 현대백화점 판교 등 주요 복합쇼핑몰 3사에 입점한 소상공인 사업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유환익 한경연 상무는 “입점 소상공인의 매출과 고용에 상당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복합쇼핑몰 규제 법안 도입 논의는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은 기자 [email protected]

온라인몰·식자재마트는 규제할 법이 없다?



#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로 인한 매출 손실은 얼마나 될까. 대형마트 3사가 추정한 강제휴무로 인한 일요일 매출 감소분은 1개 점포당 1회 휴무 시 약 3억3000만원이다. 전국 500여개 매장이 연 24회 의무휴업에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매출이 연간 3조9600억원 감소하는 셈이다. 대형마트만의 손해가 아니다. 입점업체인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의 매출 피해도 크다. 홈플러스의 경우 1개 점포당 입점업체의 매출 피해액은 약 4500만원. 이를 140개 점포로 환산하면 강제휴무 1회당 약 63억원, 연간 1512억원 가량의 매출 피해를 입고 있다. 단순 매출뿐 아니라 농·수·축산물 매입이 줄어들면서 농가 수입 또한 줄어들어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게 대형마트 관계자의 설명이다.

코로나19로  폭주한 온라인 쇼핑/사진=뉴스1DB
코로나19로 폭주한 온라인 쇼핑/사진=뉴스1DB
대형마트가 ‘규제’로 인한 어려움에 허덕이는 반면 지난해 시장 규모가 134조원으로 급성장한 온라인몰이나 최근 골목상권을 빠르게 잠식해가는 식자재마트 등은 규제에서 벗어나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다. 365일 24시간 자유롭게 영업하다 보니 성장세도 가파르다.
◆이커머스·식자재 규제 벗고 ‘훨훨’

특히 ‘가격 검색 서비스’를 내세우며 시장에 진출한 네이버 등 이커머스 기업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결제가 발생한 온라인 쇼핑 서비스는 네이버로 거래액이 20조9249억원에 달했다. 쿠팡이 17조771억원으로 뒤를 이었고 옥션과 지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가 16조9772억원으로 3위였다. 이커머스 기업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언택트(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성장 시계가 더 빨라졌다.

식자재마트도 규제를 피해 몸집을 불리는 조용한 강자다. 식자재 마트는 면적이 3000㎡를 넘지 않으면서 농축수산물 등 각종 식재료를 저렴하게 파는 곳이다. 이곳의 주 고객은 자영업자이지만 일반 소비자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엔 이곳에서 식자재뿐 아니라 생활용품과 가전제품 등 다양한 상품까지 취급하고 있다. 포인트 제도뿐 아니라 배달 서비스까지 운영하고 있어 일반 대형마트와 차이점이 없다는 게 업계 종사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사실상 대형마트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식자재 마트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영업이 자유롭다. 대형마트가 유통규제로 손발이 묶인 사이 골목상권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사세가 확장된 배경이다.

이커머스업계 거래액/그래픽=김은옥 기자
이커머스업계 거래액/그래픽=김은옥 기자
수치로도 증명된다. 한국중소기업학회 연구에 따르면 대형마트 규제 도입 후 식자재 마트 등 중대형 슈퍼마켓(연 매출 50억원 이상)의 매출 점유율은 크게 늘어난 반면 대형마트와 소규모 슈퍼마켓(연 매출 5억원 미만)은 오히려 감소했다. 점포수 역시 대형 슈퍼마켓이 123.5% 늘어나는 동안 소형 슈퍼마켓은 27.9% 감소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소비자 수요가 대형마트에서 식자재 마트로 옮겨가면서 전통시장을 포함한 영세 슈퍼마켓의 실질적인 혜택이 크지 않다”면서 “특정 업태 영업을 제한하는 것이 규제 취지를 살리지 못한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새벽·일요일 배송도 자유… 불공정 행위도↑

업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커머스 업체는 새벽 배송과 일요일 배송 등 자유로운 배송이 가능한 데 비해 대형마트는 의무휴업일과 영업제한시간대에 배송이 불가하다. 고객이 토요일에 제품을 주문하면서 일요일 배송일을 지정하면 마트 의무휴업일 경우 배송이 되지 않는 셈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처음 이 규제가 만들어졌을 2012년 당시엔 온라인 시장이 크지 않았다”며 “온라인 쇼핑 트렌드로 변화하면서 체인스토어협회에서 끊임없이 대형마트의 온라인 규제라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유권해석 상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혀 현실 반영이 되지 않은 기울어진 규제”라고 지적했다.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커머스 기업의 불공정행위가 더 빈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당경쟁으로 거래 이익을 충분히 얻지 못했을 경우 그 부담을 거래상 을의 위치에 있는 납품업체에 전가한다는 것이다.

시장 점유율이 높고 거래액이 큰 유통채널에서 이런 불공정 행위가 더 자주 발생한다고 업계는 꼬집었다. 플랫폼 영향력이 클수록 기업은 타사보다 더 좋은 조건에 납품받길 요구하고 업체 입장에서도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최근 공정위가 발표한 ‘2019년 유통분야 서면실태 조사’에서도 이 같은 관행이 여실히 드러났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대규모 유통업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은 다소 개선된 반면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판매대금 미지급 ▲지연지급 ▲판매장려금 ▲판매촉진비용 전가 등 불공정행위 유형은 증가 추세였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수수료 갑질 문제 등 이미 업체에서 자정 노력으로 안되는 부분을 어느 정도 규제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그 규제조차도 너무 과하면 시장이 위축되기 때문에 완급조절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순기능도 들여다봐야

대형마트의 순기능도 들여다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단순 대기업 오프라인 플랫폼이 아닌 입점업체, 소상공인, 자영업자, 농가 등과 어우러져 공존하는 곳이란 설명이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물건 파는 상인들만 고려할 게 아니라 관련 중소 농가들, 마트와 연결된 소상공인들에 대한 부분까지 함께 고려돼야 한다”며 “대형마트가 고사하면 농가들도 납품할 곳을 잃는다. 10개씩 납품하는 시장보다 이들에겐 1000개, 1만개씩 납품하는 마트가 더 큰 공급처가 될 텐데 이런 순기능도 외면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경기를 할 수 없다. 마트 규제를 풀어주든지 온라인 규제를 동등하게 매겨주든지 조치가 필요하다”며 “과도한 규제에 대해선 이제라도 손을 봐야 한다. 온라인 시장이 커진다고 월 2회씩 온라인 사이트 접속을 차단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설아 기자 [email protected]

대형마트-골목상권 상생은 없었다



보다 강력해진 유통 규제 법안으로 무장한 정치권에 맞서 업계와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대형마트가 과거 대규모 이익을 낼 때 만들어진 규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한다. 특히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위협한다는 발상과 일방향 규제를 버리고 상생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왼쪽부터)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왼쪽부터)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유통 규제, 실효성 없다” 한목소리

21대 국회에는 유통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이 대표 발의한 유통법 개정안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계열사가 운영하거나 일정 면적 이상인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아웃렛, 면세점 등으로 의무휴업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다.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는 사람 뺨 때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규제가 심각하게 산업을 죽이는 상황에 이커머스의 공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시름한다는 이유다.

서 교수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가하는 현행 규제도 실효성 논쟁이 심각한데 이를 확대 적용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 처사”라며 “규제를 할수록 소비가 침체되고 내수가 위축돼 중소상인도 어려움을 겪고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밑도 끝도 없는 규제 강화”라며 “유통 규제가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데 효과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 백화점, 쇼핑몰 등은 전통시장과 고객층이나 소비패턴이 달라 규제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목적지로서 전통시장의 개념은 사라졌다. 전통시장은 지나가다 방문하는 비목적 고객의 비율이 높다”며 “반면 대형마트와 백화점, 복합쇼핑몰은 목적 고객의 비율이 높아 대체재 관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도 “대형마트 규제로 인해 골목상권이 활성화됐다는 근거가 없다”며 “오히려 기존 대형마트 고객이 식자재 마트와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면서 대형마트 납품업체의 피해와 소비자 불편만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백화점과 면세점 등으로 규제를 강화하자는 유통법 개정안에 대해 조 교수는 “백화점은 명품족, 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이용한다”며 “전통시장과 교집합이 없는데 규제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10년 전 패러다임 바꿔야… 규제 완화론

전문가들은 오히려 현행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대형마트 규제 효과가 불분명하고 소비자의 불편만 가중되는 만큼 규제의 타당성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0년 전 대형마트가 잘나가던 시절에 채워진 규제의 족쇄를 이제는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통산업 규제 변화/그래픽=김은옥 기자
유통산업 규제 변화/그래픽=김은옥 기자
2010년 유통법이 만들어진 당시만 해도 대형마트는 공격적으로 점포를 확장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통시장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며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 이커머스는 새벽배송을 서비스하는데 대형마트는 영업시간 규제에 발목이 묶여 온라인 공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서 교수는 “유통법은 10년 전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진 규제다. 완전히 재검토하지 않으면 시대를 역행하게 될 것”이라며 “유통법이 올해로 10년이고 일몰제가 끝나는 만큼 연장해선 안된다”고 힘줘 말했다.

조 교수는 코로나19로 소비가 침체된 상황에 주목했다. 그는 “정부가 ‘동행세일’을 여는 등 소비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유통 채널을 막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났다”며 “코로나19 사태에서 한시적으로라도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조 교수는 일부 출점 규제는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 등이 포화상태인 업종의 경우 자영업자끼리 경쟁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통업체-소상공인 상생 가능성은?

정치권이 유통 규제를 강화하려는 명분은 골목상권 활성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통업체 규제를 통한 간접적인 골목상권 살리기보다 전통시장, 소상공인에 대한 직접 지원이 효율적이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소상공인을 위한 소득지원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세액공제를 확대하거나 일정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달에 부족한 금액만큼 경영지원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원기간은 2년을 넘지 않도록 하고 사업에 실패할 경우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서 교수는 전통시장이 자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시장의 방문객을 늘려야 한다”며 “지자체별로 전통시장 관련 예산을 활용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지역 주민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이벤트나 마케팅, 공공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대형마트 규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커머스 공세, 코로나19가 유통업계를 벼량 끝으로 몰고 있다/사진=뉴스1 DB
대형마트 규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커머스 공세, 코로나19가 유통업계를 벼량 끝으로 몰고 있다/사진=뉴스1 DB
실제로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있는 ‘메르카도 다 히베이라’의 경우 2000년대 대형마트에 자리를 내주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젊은 분위기의 푸드코트와 술집을 만들어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서도 역사·문화·특산물 등 지역 자원과 연계한 특성화 시장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방식으로 전통시장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경고했다. 안 교수는 “전통시장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대형마트를 규제했더니 식자재 마트라는 경쟁자가 생겼다”며 “언제까지 정부가 나서 전통시장을 보호할 순 없다. 시장 수요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