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 주식회사 만월경 대표 /사진=김노향 기자
김재환 주식회사 만월경 대표 /사진=김노향 기자

13㎡(4평) 집앞 공실 상가에서 시작된 무인카페11개월 만에 27개 지점 확장… 영업이익률 70%24개 가맹점주에게 로열티 ‘0원’ 창업 지원지역민·예술인에게 기회 제공하는 공존의 공간

서울 도심에서 지하철로 30분 이상 소요되는 1호선 녹천역. 역세권이지만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적고 시내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스타벅스도 없는 오래된 단지 앞 상가건물에 13㎡ 면적의 무인카페가 있다.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이 카페의 커피 한 잔 값은 1400원. 가장 비싼 음료도 2500원을 넘지 않는다.
착한 가격이지만 내부 인테리어와 커피 맛을 평가하자면 ‘무인카페의 퀄리티는 낮다’는 선입견을 깨뜨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다. 작은 테이블 3개, 의자는 벤치를 포함해 8~9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공간에 한 시간 동안 음료를 사간 손님은 어림잡아 10명 이상이다.

2020년 12월 이 곳 녹천점을 시작으로 문을 연 ‘카페 만월경’은 오픈 11개월 만에 지점 수가 27개로 확장됐다. 현재 수도권에 3개의 직영점과 24개의 가맹점이 영업하고 있다. 모든 매장은 오픈 첫 달부터 흑자를 냈다. 아직 ‘성공’이라고 부르기엔 작은 출발이지만 영업이익률이 65~72%라는 말을 들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많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이 폐업하는 상황에서 무인카페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창업자 김재환 대표(29)는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라고 평가했다.
사진=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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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있어도 소외된 지역에 무인점포 적합

많은 직장인들이 스트레스와 불안정한 미래 등을 이유로 ‘파이어족’(경제적 자립을 이뤄 자발적인 조기 은퇴를 함)을 꿈꾸지만 김 대표의 출발은 이들과는 약간 달랐다. 재테크에 열중하는 MZ세대(1981~1995년 출생한 밀레니얼(M) 세대와 1996~2010년 출생한 Z세대)답게 소자본으로 시작한 부업이 본업으로 뒤바뀐 케이스다. 3년차 경제지 기자였던 김 대표는 “기자라는 직업과 일을 사랑했고 지금도 아쉽다”고 말했다.
“사표를 던진 것은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갑자기 밀려드는 가맹 문의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비즈니스의 확장 때문이었어요. 결국 동료 기자였던 아내까지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어요.”

부모님의 교육철학 때문에 스무살부터 모든 생활비와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던 김 대표는 본인을 ‘흙수저’라고 표현했다. 신혼집으로 사는 32년 된 전세 아파트 앞에 낡은 공실 상가가 있었는데 면적이 너무 작아 무엇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무인상점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곧바로 실행했다.

오픈 전 주민들에게 무료 시음회를 할 때는 가게 바깥까지 줄이 섰는데 막상 판매를 시작하자 손님이 없었다. 김 대표는 “예비 창업자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 저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은 내 손님이 될 것이란 기대”라며 “눈에 보이는 유동인구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무인상점은 망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임대료가 낮아야 한다. 임대료는 가장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카페가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유동인구가 적은 서울 외곽엔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자연히 임대료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자본이 부족한 김 대표에게 기회로 여겨졌다. 오픈 첫날에는 한 시간 내내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어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도 들었다. 하지만 현재 만월경은 모든 점포가 하루 80~90잔의 음료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한 달 순수익은 200만~450만원 수준이다.


“손익분기 판매량이 커피 30잔이에요. 임대료가 싸기 때문에 가능하죠. 만월경의 월 임대료는 점포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장 낮은 곳은 35만원, 비싸도 100만원을 넘지 않아요. 그러나 싼 맛에 먹는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어요. 요즘 소비자는 가성비를 따지는데 가격보단 맛이 중요하고 이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포인트죠.”

김 대표는 좋은 커피 맛을 내기 위해 스타벅스의 가장 대중적인 원두를 선택했고 3명의 바리스타와 연구한 끝에 두 달 반 만에 테스트를 완료했다.
사진=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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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티 없애고 상생 모델 추구

김 대표는 프랜차이즈 점주에게 착취 구조인 로열티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점주들은 원재료 값만 부담하면 된다. 매출이 늘 좋을 수만은 없기에 리스크를 최소화한다는 이유다. 차로 5분 거리 내 매장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서다. 점주가 성공해야 창업자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모토다.
최근 무인상점 기물파손이나 절도 등 보안 문제가 증가하고 있지만 김 대표는 이에 대한 신념도 확고했다. 그는 “24시간 CCTV를 확인해도 오픈 11개월 동안 이상한 손님은 딱 한 번 왔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노숙인 행색을 하고 비를 피하러 왔기에 매장으로 달려왔고 도와드릴 것이 있는지 물었어요. 음료를 마실 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음료를 한잔 뽑아주고 편히 쉬다가 가시라고 말했어요. 누군가는 호구가 아니냐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이런 소수의 사례 때문에 많은 좋은 손님을 잃는 건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이케아의 서비스에서 이런 아이디어에 착안했다. 이케아는 사은품 제공이나 파손·환불 등에 있어 100% 무료서비스를 시행하는데 99%의 좋은 손님을 위해 1%의 블랙컨슈머를 포용한다. 한국의 이케아 매장에서 방문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연필을 통째로 도난당한 일은 유명한 사건이다.

김 대표는 “무인이어서가 아니라 자영업자라서 이러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만월경 내부의 물품 창고는 자물쇠도 채워놓지 않았다. 김 대표는 “무인상점은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까 도난당할 것이란 의심 자체가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며 “지금까지 도난사고는 매장 내 화분을 가져간 게 다인데 큰 피해가 아니어서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김노향 기자
사진=김노향 기자

단순 카페 아닌 ‘공간’… 사람을 잇는 ‘플랫폼’

만월경은 ‘달과 고래’라는 뜻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커피 프랜차이즈가 된 스타벅스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김 대표는 로고와 브랜드 상징성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만월경은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지역민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가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이고 ‘바다의 천사’라고 불리죠. 어르신들도 읽기 쉬운 한글 이름을 구상하다가 만월경이란 이름과 로고를 만들게 됐습니다.”

만월경은 최근 지역 예술인과 협동하는 전시·판매공간으로도 탈바꿈했다. 무명 미술인의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금은 수수료 없이 전액 작가에게 돌려준다. 인테리어 효과가 있고 지역 예술인과 상생의 의미도 있어 보람 있다는 그다. 직영점의 수익금 일부도 월드비전에 기부한다. 점포 관리 매니저를 채용하는 경우 관내 주민을 우선한다.

그의 꿈은 영속 가능한 플랫폼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법인으로 전환한 주식회사 만월경은 인테리어, 부동산업, 제조업 등 다양한 사업분야의 투자를 유치해 거대자본에 쓰러지지 않는 ‘가업’을 세우는 것이 최종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