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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 건설현장 모습. /사진=뉴스1 |
▶기사 게재 순서
(1)“사업주도 처벌”… 경영계 반발 속 시행 임박한 ‘중대재해법’
(2)“CEO 처벌 피하라”… 리스크 대비 나선 기업들
(3)햄버거 먹고 식중독, 누가 책임지나요?
“이런 경우도 형사처벌 받나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시기가 오는 27일로 다가오자 정부 당국은 기업들로부터 이 같은 질문들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자와 경영 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둘러싸고 기업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자동차, 먹는 샘물 등 일반 소비재 제품까지 중대법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아 법 시행 이후 혼란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달 라이더 사고 책임자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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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에서 라이더유니온 회원들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배달 안전운임제 도입과 라이더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중대재해법에서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는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올 경우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노력이 미흡했다고 판단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배달 라이더들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중대재해법은 보호 대상을 도급·용역·위탁 등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지정했다. 하지만 처벌 대상을 명확하기 위해선 조항 정리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중대재해법 제2장 제5조에 따르면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할 경우 중대재해법 발생 시 처벌을 받는다. 배달 라이더는 특별한 시설, 장소 없이 이륜차를 이용해 배달한다.
라이더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위탁 계약을 맺은 배달플랫폼 대표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중대재해법 제2장 제4조를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기엔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할 경우’가 빠져 있다.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4조를 적용하면 배달플랫폼 대표가 처벌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 관계자는 “4조와 5조를 각각 적용할 때 처벌 여부가 달라져 현재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윤기 법무법인 고우 대표 변호사는 “배달 플랫폼의 경우 라이더를 실질적으로 운영 관리한다기보단 단순한 주문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플랫폼 업체에겐 실질적 지배 운영 관리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가능하다”며 “라이더는 특별한 시설 없이 배달하기 때문에 중대재해법이 적용되기 위해선 장비나 장소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 운영 관리 여부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콜을 강제하는 등 실질적으로 라이더들의 운행을 지배하거나 배달을 운영한다면 적용이 될 수도 있다”며 “결국 구체적인 사례를 봐야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달대행업체가 상시 관리자를 4명만 채용하고 배달기사 수십명과 위탁 계약을 체결할 땐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받지 않는다. 플랫폼 종사자가 5명 이상이어도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택배기사 역시 중대재해법 보호 대상이다. 고윤기 변호사는 “택배사업자가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하면 택배기사에게 근로자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5인 이상의 사업장이라면 그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택배사업자가 택배기사와 운송위탁계약을 체결하면 라이더처럼 사업주가 택배기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 운영, 관리 책임이 있는지에 따라 적용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직원 자살·재하청 사고도 처벌
원청에서 발주하는 일감이 하청·재하청으로 내려졌다. 재하청 직원이 공사 현장에서 사망하면 원청·하청 사업주 모두 책임을 질 수 있다. 사업이 여러 차례의 도급에 따라 행해질 때 ▲각 단계의 수급인 ▲수급인의 근로자 ▲수급인의 노무 제공자를 모두 중대재해법 적용 종사자로 보고 있다.
공동대표가 있는 제조사의 공사 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대표 두 명 모두 처벌받을 수 있다. 고윤기 변호사는 “개별 사안마다 안전과 보건 확보의무 불이행에 관한 최종적 의사결정권의 행사나 그 결정에 관여한 정도를 구체적으로 고려해 한 명에게만 책임이 있는 경우 한 명만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 현장에서 한국인 직원이 사고를 당하면 국내 본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받을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해외 현장에 적용이 배제된다고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고윤기 변호사는 “형법 제8조는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형법 총칙상 규정은 다른 법령에서 정한 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법 제3조는 내국인의 국외범도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중대재해법은 이와 관련된 별다른 규정이 없으니 해외에서 발생된 사고 역시 중대재해에 해당돼 형법 제3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실적 한계(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시 해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재해는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고 해외 현장에서의 재해 사고 수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 등)를 들어 사실상 해외 현장에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고 평가했다.
과도한 업무량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직원이 자살하면 해당 기업의 사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다. 산안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장시간 근로,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작업, 차량운전 등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종사자의 건강이 해로워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냉동피자 먹고 식중독 걸리면 사업주 감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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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구성원들이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법령 점검 민간위탁 점검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시행령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최근 기업들은 중대시민재해 대상 범위에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한 원료,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대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부상자가 10명 이상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소비자 10명 이상이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햄버거를 먹다 식중독에 걸리면 프랜차이즈 사업주는 처벌을 받게 된다. 소비자의 보관상 과실로 판단되면 중대재해법 적용에서 벗어난다. ‘제조물의 설계·제조·관리’상 결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기업이 제조한 냉동피자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유통 과정에서 식품 변질이 발생해 소비자들이 식중독에 걸려도 유통기업 사업주가 책임을 질 수 있다. 최근 기업들은 중대시민재해법 시행에 더욱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자동차, 먹는 샘물과 같이 인체 유해성이 없는 제조물도 설계·제조·관리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결함이 발생하면 중대시민법 대상이 된다는 해석을 내놓으면서다.
전기자동차에서 결함이 발생, 사망자가 나오면 자동차 제조사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다. 사고 원인이 배터리, 타이어 등 부품 문제로 확인되면 완성차업체가 아닌 부품업체 사업주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코로나19 백신도 중대시민재해가 설명하는 ‘특정한 원료나 제조물’에 해당될 수 있다. 중대재해법은 국내법인 만큼 한국화이자제약 대표와 모더나 한국법인 대표 등이 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백신 부작용을 ‘제조물의 결함’으로 입증하는 것은 물론 백신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 인정도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법조계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