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STX 대표가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박상준 STX 대표가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종합상사기업 STX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STX는 국제 무역과 해운, 물류 분야에 특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차전지 원료 사업과 기업 간 거래(B2B) 플랫폼 개발에 집중한다. STX를 이끌고 있는 박상준 대표는 자원개발 성공 경험과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종합 사업회사로의 도약 준비를 마쳤다.

이차전지 '업스트림'(Upstream) 집중 공략

STX는 이차전지 소재 사업 분야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광물자원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다양한 산업재에 쓰이는 광물자원은 수요가 지속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원 부국들이 자원을 무기화하고 있어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더 해지고 있다.

박상준 대표는 이차전지 밸류체인 중에서도 업스트림(Upstream, 후방산업) 시장에서 소재 전문기업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할 계획이다. 전기차나 배터리 완성품 등 최종재를 의미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 전방산업) 분야에는 이미 많은 기업들이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하지만 업스트림 분야는 아직 블루오션으로 여겨진다. 박 대표는 "전기차 시대에 종합 무역상사 STX의 역할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했다"며 "이차전지 업스트림 분야에서 일관된 생산체계를 구축한 소재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에 맞춰 박 대표는 전 세계 주요 광물 자원국에서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 전 세계적으로 주요 광물로 꼽히는 니켈은 세계 3대 광산 중 하나인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에 투자하면서 채굴, 운송, 판매권을 확보했다. 연간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최첨단 소재 그래핀의 원료인 흑연은 2019년 모잠비크 카울라 광산으로부터 채굴, 운송, 판매권을 확보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케 했다.

박 대표는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인 니켈과 리튬, 흑연 등의 원활한 조달을 위한 공급망 구축과 확대에 힘쓰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니켈 매장량과 생산량이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지 법인과 합작투자회사(Joint Venture, JV)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보유한 광산 지분을 통해 니켈 원광에서부터 중간재까지 아이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리튬 확보에도 적극적이다. STX는 지난 6월 중국 리튬 생산기업인 영정리튬전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수산화리튬 사업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국내에 수산화리튬 정련공장을 구축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고품질의 리튬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47년 트레이딩 노하우로 '공급망 안정성' 높인다

박상준 STX 대표

박 대표는 28년 만에 STX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1990년 STX의 전신인 쌍용그룹에 입사해 상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박 대표는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났지만, 과거 STX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 임직원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신세를 졌다"며 "회사 정상화를 통해 마음의 빚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가 취임 초기부터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47년 동안 STX가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 덕분이다. STX는 1976년 설립됐다. 금속, 철강 등 원자재와 에너지, 기계·엔진 등 산업재 트레이딩 사업을 전문으로 한다. 오랜 업력과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총매출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지금도 일본, 중국, 러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베트남, 말레이시아, 페루 등 전 세계 20여 곳에 법인과 사무소를 운영하며 한국 무역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인 광물자원들은 가깝게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멀게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같은 남미나 아프리카까지 공급망 범위가 매우 넓다"며 "글로벌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원 부국들이 국익을 명분으로 보호무역의 색채를 강하게 띠며 자원의 반출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종합상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STX도 자원 부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법인과 JV를 설립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 대표는 "인도네시아만 하더라도 니켈을 채굴했다고 해서 곧장 반출할 수 없고 현지의 정련, 제련공장에서 가공을 마쳐야만 한다"며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공장도 지으면서 경제발전에 기여하라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자원 사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광물자원 가격변동에도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STX는 오랜 기간 축적된 파생상품 운영역량을 통해 헤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상사 특성상 원자재 가격과 환 변동 리스크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덕분에 대내외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B2B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플랫폼 '트롤리고'

박상준 STX 대표이사(오른쪽)와 강용구 나이스디앤비 대표이사가 트롤리고 업무 협약(MOU) 체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STX
박상준 STX 대표이사(오른쪽)와 강용구 나이스디앤비 대표이사가 트롤리고 업무 협약(MOU) 체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STX

STX는 산업재 B2B플랫폼 트롤리고(Trollygo) 출시를 앞두고 있다. 트롤리고는 온라인 거래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글로벌 원자재, 산업재 거래를 디지털화한 플랫폼이다.

박 대표는 STX의 미래를 책임질 사업으로 B2B플랫폼을 개발해 왔다. 그는 "그동안 상사는 제한된 정보만 갖고 거래를 해 왔는데 이런 방식으론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사람이 바뀌면 네트워크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떻게 하면 이 네트워크를 내재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B2B플랫폼이 해법이 될 것이라 결론 내렸다"고 했다.

트롤리고는 업무 프로세스를 매뉴얼화하고 회사의 인적 자산 등을 시스템화해 새로운 거래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업력, 매출 규모, 생산능력 등에서 검증된 벤더를 참여시킴으로써 오프라인 거래에서 수반되던 리스크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제품과 서비스 역량을 갖추고도 글로벌 유통망 미비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중견, 중소기업들에는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STX가 47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트롤리고 개발에 나섰지만 개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회사마다 거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는 "B2B 산업은 기본적으로 신용 거래를 하는데 회사별로 다양한 결제 조건이 있어 이를 시스템에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며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힘을 모아 헤쳐 나갔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탄탄한 펀더멘탈을 갖춰 STX를 글로벌 트레이딩의 대표주자로 도약시키고자 한다. 에너지, 소재 중심으로 미래 먹거리가 될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는 동시에 그동안 구축해 온 글로벌 네트워크와 공급망 강화를 통해서다.

박대표는 "글로벌 시장 변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공급망을 얼마나 우리의 통제 아래에 둘 수 있느냐가 STX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며 "창립 이후 쌓아온 경험과 저력으로 앞으로의 50년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상사의 재산은 사람이기에 직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