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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징계위원회 위원으로서 몇 건의 신고 사례를 심의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는 직장 내 직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상급자가 서류철을 세게 내리치며 호통을 치거나 사적 심부름을 시키는 등 업무 내·외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하는 모습은 드라마 속 회사생활을 묘사하는 단골 소재였다.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에서 한 번쯤은 듣거나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행위들이다.
2019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갑질'보다 넓은 개념으로서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 인식이 정착됐다. 규정에 근거해 괴롭힘 신고와 처분 사례도 늘고 있다.
'직장갑질 119' 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직장인의 약 30%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하고 있다. 신고 피해자에 대한 비밀 보호, 징계 처분의 적정성 문제, 소규모 또는 가족 기업인 경우와 대표이사가 가해자인 경우 등 제도 사각지대에 관한 한계도 드러나는 실정이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는 점은 직장 내 괴롭힘의 신고 접수와 조사 실시의 주체가 사용자라는 점이다. 공공기관 내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기업의 경우 회사 내 별도의 조직기구 또는 외부 인사를 통해 독립된 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다만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자체조사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조 사과정, 사후 징계에 관해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인 경우 감사나 이사회 구성원이 모두 사업자의 특별관계인인 가족경영 회사라면 구조 자체로 직장 내 괴롭힘의 신고 및 적정한 처리 과정을 기대할 수 없다.
피해자에 대해 신고 사실을 이유로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사용자의 형사 처벌을 규정하고 있지만 신고 사실 자체나 신고 내용에 관한 비밀 보호는 여전히 취약하다. 피해자로서는 신고 이후 직장 내 따돌림을 겪거나 압박감에 자진 퇴사하는 등 여전히 신고자는 스스로 중한 부담감을 감내하며 신고를 '결단'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위나 관계의 '우위성'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수평 관계 내 집단 괴롭힘에 의해 같은 피해는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성립 요건과 범위에 보다 실질적인 재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이 4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전반적인 제도 점검을 통해 여전히 우리의 직장 내 구석구석에서 곪고 있는 문제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프로필] 조연빈 변호사▲법무법인 태율(구성원 변호사) ▲서강대 법학과 졸업 ▲2019년 서울특별시장 표창 ▲한국여성변호사회 기획이사 ▲한국성폭력위기센터 피해자 법률구조 변호사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법률지원 고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