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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의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경영계의 시름이 깊어진다.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이 확대됨에 따라 일선 현장의 노사 관계 불안정성이 커지고 상시적인 노동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여기에 최근 국회 야당을 중심으로 사용자의 범위를 더욱 광범위하게 확장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 입법까지 추진되고 있어 기업의 부담을 높이고 있다.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 인정 판결 잇따라
최근 현대위아 창원공장 하청 노동자 46명은 원청인 현대위아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돌입했다. ▲정규직과 동일한 작업을 하고 ▲현대위아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만큼 원청인 현대위아 측이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요구다.앞서 현대위아는 평택공장 하청노동자들이 2014년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7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2021년 대법원 최종 패소 판결을 받고 올해 초 자회사를 설립, 하청노동자 고용에 돌입한 바 있다. 하지만 전체 하청노동자의 2%에 해당하는 창원공장 하청 노동자 46명이 자회사 고용을 직접 고용으로 볼 수 없다며 다시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다른 기업들도 불법파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재까지 8차례에 걸쳐 원청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1·2차 소송은 2022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가 확정됐고 3·4차는 항소심에서, 5차는 1심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최근 6·7차 소송 1심 판결에서도 법원은 포스코의 사내하청 노동자 고용이 불법파견이라며 하청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청 노조는 현재 이 같은 판결은 근거로 포스코에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도 최근 전직 대표와 임원이 불법파견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HD현대건설기계가 하청노동자에게 업무 수행을 지시했고 원·하청 노동자의 업무에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 직후 사내하청노조 측은 원청의 불법파견 인정과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는 항소를 통해 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단 입장이다.
현대자동차 역시 최근 하청근로자 91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19명에 대한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내용의 1심 판결을 받았다. 하청 노조는 나머지 인원에 대한 근로자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항소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향후 지리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법원이 잇따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이유는 원청기업이 이들에게 실질적인 업무지시를 내려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법 상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의 근무형태가 원청업체의 지휘·감독을 받는 등 실질적인 파견근무라고 볼 수 있다면 2년 이상 근무자들은 원청업체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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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 반발↑… 노란봉투법까지 '설상가상'
경영계는 현행 파견법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행 파견법상 파견관계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도급관계에 파견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불법파견으로 판단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행 파견법 제2조 제1호의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사용사업주의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지휘·명령'으로 명확히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이를 통해 도급목적을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하청회사의 사용자나 현장대리인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지휘명령하는 경우 등을 파견법에 따른 지휘·명령으로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사용자의 개념을 대폭 확대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이 추진되면서 향후 원청의 책임 범위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노조법 개정안을 보면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자 또는 노조에 대해 노동관계 상대방의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해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했다. 이는 결국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과의 관계에 대한 판단 등에 따라 사용자 범위를 제한 없이 확대해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고 법적안정성을 침해한다는 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경총 관계자는 "개정안은 사내하청의 경우 원청사업주를 무조건 사용자로 규정하는 등 민법상 계약을 형해화하고 도급·파견 등 기업 간 계약을 통한 경제적 관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이는 대기업의 외주·하도급 업무를 수주하거나 근로자 파견사업을 수행하는 중소기업의 해체를 초래해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소수의 대기업이 대다수 근로자를 직접 채용·관리하게 해 대기업 중심의 노동시장으로 수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최근 '노조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에서 ""국내 산업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업종별로 다양한 협업체계로 구성된 상황에서 원청기업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쟁의행위를 하게 된다면 원청기업이 국내 협력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거나 해외로 이전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상실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