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물가와 고금리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최근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 겹치며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가계 통신비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정부는 가계 통신비를 줄이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실질적인 대책 마련 지연은 불가피하게 됐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고물가와 고금리 그로 인한 경기 침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의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경제 회복 전망이 더 암울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는 경기 개선세가 제약된 가운데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정치적 혼란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수입 원재료 가격 상승과 물가가 인상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식료품 물가도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 세계 식량 가격이 1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고환율로 수입 원자재 비용이 급등하고 있어 서민 가계의 부담이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체감 물가와 직결되는 가계 통신비에도 관심이 모인다. 가계 통신비는 가계 소비지출에서 큰 비중(약 5%)을 차지한다. 통신비를 줄이면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신비 인하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이같은 판단 하에 윤석열 정부도 출범 이후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해 칼을 빼들었다. 정부 압박에 통신 3사는 5세대 이동통신(5G) 최저 요금제를 수차례 개편하며 가격 인하에 나섰다. 현재 SK텔레콤의 5G 최저 요금제는 월 3만9000원, KT와 LG유플러스는 3만7000원으로 올해 초 평균 4만7000원이었던 최저 요금제 대비 인하됐다. 요금제 개편 여파에 올해 3분기 통신3사 평균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은 2만9158원으로 3만원 밑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단통법 폐지안 연내 통과 불투명
가계 통신비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가계 통신비는 월평균 12만5000원으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던 2022년 2분기 12만3000원에 비해 오히려 1.6% 증가했다. 단순히 요금제를 손보는 정책만으로는 통신비 인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한국의 통신비 구조는 단말기 가격과 통신요금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여서 통신요금이 낮아지더라도 단말기 가격이 오르면 가계 통신비가 줄어들지 않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가계 통신 서비스 비용은 줄었지만 스마트폰 단말기 구매 비용은 늘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통신 서비스 비용은 12만2802원에서 9만9948원으로 18.6% 낮아졌지만 가구당 월평균 통신 장비 지출액은 2013년 8172원에서 2023년 2만7945원으로 242% 높아졌다.
애플이 올해 출시한 아이폰16(256GB)의 가격은 140만원, 삼성전자가 출시한 갤럭시Z폴드6(256GB)의 가격은 222만9700원으로 책정됐다. 10년 전에 출시된 아이폰6 16GB 모델 출고가(92만4000원)와 갤럭시노트 32GB 출고가(95만7000원) 보다 2~3배가량 오른 셈이다.
스마트폰 가격 상승은 단순히 단말기 제조사의 수익성 추구 때문만은 아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스마트폰의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고성능 칩과 부품의 가격이 동반 상승해서다. 이러한 '폰플레이션'(폰+인플레이션) 현상은 앞으로도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5년 글로벌 스마트폰 평균판매가격(ASP)이 올해 대비 5% 상승한 385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실효성있는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를 올해 초 약속했다. 단통법은 단말기 지원금을 제한해 소비자들이 고가의 스마트폰을 비싼 가격에 구매하게 만든다는 비난을 받았다. 폐지가 이루어지면 통신사의 지원금 경쟁이 부활해 소비자들이 저렴하게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폭풍으로 국회가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서 단통법 폐지안의 연내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당초 단통법 폐지 내용와 후속 조치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AI 기본법)과 함께 지난 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다. 법사위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특검법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상정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통신비 인하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 가계 부담을 줄여야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민 경제의 부담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며 "실효성있는 통신비 인하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 서민 살림살이에 실질적인 보탬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