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증시는 정치 테마주의 해로 기억될 듯하다. 연초부터 마땅한 주도주가 없는 상황에서 4월 총선에 이어 내년 조기 대선 가능성에 한해의 시작과 끝을 관련주가 주도한다. 내년 상반기에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에 벌써부터 정치 테마주가 거래량과 금액은 물론 수익률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이후 4일부터 26일까지 코스피와 코스닥 전체 거래량 상위 10개 종목 중 8개가 정치 테마주다. 이 기간 급등 상위 10개 종목 중에선 9개가 정치 테마주로 급등락 속에서도 수익률이 100~400% 안팎에 달한다. 대부분 대선 잠룡의 고향에 본사가 있다거나 임원이나 최대주주 등이 단순히 대선 후보들과 동창, 동향 심지어 동성(同姓) 이라는 이유 등 개연성이 떨어진다.
과거처럼 "유력 정치인이 사용하는 특정 브랜드의 주가가 오른다"는 등 허무맹랑한 근거로 주가가 요동치는 모습이다. 해당 회사가 "언급되는 정치인과 관련이 없다"고 밝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치 테마주는 대개 실적과 무관하게 정치인의 정책이나 인맥 등과 엮여 가격 변동성이 큰 종목을 말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2일부터 16일까지 주요 정치 테마주 지수 일별 등락률을 보면 최대 하락률은 마이너스(-)5.79%에서 최대 상승률은 12.98%로 조사됐다. 각각 코스피의 -2.78%~2.43%, 코스닥의 -5.19%~5.52% 등 시장지수에 비해 변동성이 휠씬 컸다.
금감원은 이번에도 정치 테마주의 급등락에 불공정 행위 집중감시에 들어갔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변동성이 큰 만큼 투자 이익과 손실 가능성도 크다. 정치 테마주는 급등락을 이용해 한탕을 노리는 특정 세력의 좋은 먹잇감이다. 특정 세력은 옷깃만 스쳐도 테마주로 엮어낸다. 주로 해당 주식을 보유한 채 유력 정치인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찾아 흘린다.
단기 호재로 한탕 심리를 부추겨 매수세가 몰려 주가가 급등하면 대거 매도해 차익을 올리지만 주가가 급락하면 선량한 투자자들만 피해를 떠안는 구조다. 주가를 띄우기 위해 오프라인은 물론 커뮤니티 모임이나 소셜미디어, 메신저 등을 이용한다.
미국 등 주요 해외 증시도 정치 테마주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공약이나 정책 관련 종목들로 국내보다 변동성도 작다. 한국 주식시장만 정책이 아닌 인맥으로 엮여 주가가 춤을 추는 테마주가 판을 친다. 부끄럽지만 정치와 경제(기업)의 끈끈한 정경유착 잔재가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식은 변동성을 극복하는 투자자만이 수익을 얻는 게임이다. 변동성은 주식투자를 어렵게 만들지만 싸게 사 비싸게 파는 걸 가능케 한다. 정상적인 변동성을 인정하고 실적과 펀더멘털(기초체력)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비정상적인 변동성은 피하거나 이기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내년엔 정치 불확실성 속 내수 부진과 우리 경제의 버팀목 수출 둔화까지 겹쳐 증시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수출 기업들의 내달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 환경 악화 우려도 팽배하다. 그렇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말 그대로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은 변동성 장세에 개미들이 시장을 극복한 원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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