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등·지방법원 전경/사진=황재윤 기자
대구고등·지방법원 전경/사진=황재윤 기자


자신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상(聖像) 조각가라고 지자체를 속여 3억원에 가까운 돈을 가로챈 70대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대구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어재원)는 2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71)씨에게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A씨는 "(자신을)세계적인 조각가"라며 "조각 작품을 기증하겠다"며 속여 청도군을 상대로 조형물 20점 작품비로 2억9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의 작품은 중국 허베이성 석가장 지역의 조각 공장에 요청해 중국산 대리석으로 제작한 뒤 인천항을 통해 수입해 청도군에 납품됐다. 조각상 18점과 철제 상징물 2점은 경북 청도군 신화랑풍류마을공원과 새마을발상지기념공원에 설치됐다.

A씨는 또 신안군 하의도에 천사 조각상을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피해자로부터 2018년 12월27일 작품 88점의 대금 명목으로 4억9900만원을 교부받는 등 모두 18억6870만원을 교부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그가 내세운 경력은 로마, 파리 등지의 공방에서 조각 수업, 프랑스 국립 에콜 데 보자르 졸업, 파리대학 명예 종신교수, 로만 카톨릭 예술원 정회원, 바티칸 조형 미술 연구소 고문으로 한국과 파리 루브르박물관 등 세계 20여개국 200여곳의 미술관과 성당에 작품을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성화·성상 조각가로 알려진 A씨에 관해 수차례 언론에서 보도가 됐지만 실제로는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10대 초반부터 철공소, 목공소 등에서 일하다가 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상습사기죄 등으로 수차례 복역했다.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등 제대로 된 조각 교육을 받거나 해외에서 조각가로서 활동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본 나가사키 피폭 위령탑 조성, 광주·부산 비엔날레 출품,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 성인상 조성 등과 파리석좌교수 초빙, 피렌체 미술관 전속 작가, 평창올림픽 문화예술계 홍보대사 등 경력 또한 모두 허위였다. 해외로 입양되거나 해외에서 활동했던 경력은 전혀 없었다.

재판부는 "청도군수와 청도군 담당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허위로 고지하는 등 범행 수법이 대담하다"며 "피해를 회복하거나 합의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는 등 범행 후의 정황도 좋지 않은 점, 피해 발생이 있어 청도군에도 학력과 경력 사항에 대해서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전남 신안군에 대한 천사 조각상 사기 사건에 대해서는 "기망 행위와 편취액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고 계약 체결에 편취 범의(犯意·범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에도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