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기자 출신 홍찬선 작가가 시인 백석의 흔적들을 2년 동안 답사하며 심혈을 기울여 쓴 다큐멘터리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전 2권)을 출간했다.
'백석의 불시착'은 시인 백석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내용들을 전면 수정해 작가 특유의 취재와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한 부분들이 흥미롭다.
단적으로 백석의 등단작 '정주성'의 위치가 대표적이다. 홍경래의 난이 있었던 평안북도 정주성에 관해 쓴 것이라는 게 평단의 해석이다. 하지만 홍 작가는 경남 진주의 진주성을 노래한 시라고 봤다.
홍 작가는 "백석의 데뷔시 '정주성'은 제목만 정주성일 뿐 실제 장면은 진주성"이라며 "내용도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뒤 성이 허물어진 모습을 아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 작가는 백석의 마지막 시집 제목 '사슴'에 대해서도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백석의 이 시집에는 '사슴'이란 제목의 시도 없고 사슴이란 시어도 등장하지 않는데 시집을 '사슴'이라고 지은 것은 일제 검열을 피하면서 배달겨레를 상징하기 위해서였다"며 "당시 일제가 배달겨레의 상징인 범을 멸종시키고, 말도 범 대신 호랑(虎狼)이라는 한자 말로 바꿔버린 상황이었다. 백석이 신라 때부터 임금을 상징한 사슴으로 일제 검열을 피한 것인데 지금까지 누구도 이런 내용을 문제 삼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설 '백석의 불시착'은 작가 특유의 새로운 시각이 주축을 이루는 만큼 저자가 지난 2년간 발로 뛴 취재가 돋보인다. 홍 작가는 소설의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백석이 유학했던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대학과 졸업 여행을 다녀온 이즈반도, 백석이 1940년부터 광복될 때까지 살았던 만주 신경(현 심양), 안동(현 단동) 등을 두루 답사하고 자료를 모았다. 또 백석이 조선일보 기자 시절 다녔던 광화문과 소공동은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뚝섬 현장도 직접 찾아 소설 재료들을 발굴했다.
홍 작가는 "백석 시인이 교유했던 허준, 신현중, 정현웅 등 언론인들과 한용운, 정지용, 김기림, 이상, 윤동주 등 문인들을 소설 곳곳에 실명과 가명으로 입체적으로 배치했다"며 "소설은 허구이지만 역사적 현장성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고 밝혔다.
홍 작가는 1963년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산동리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 동안 경제 기자로 일했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과 편집국장을 지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2017년 은퇴한 후 시인이자 소설가, 희곡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백석의 불시착 / 홍찬선 지음 / 스타북스 펴냄 / 3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