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에서 기준 가격인 iNAV 오류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제도 정비와 시스템 마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사진=이미지투데이
ETF에서 기준 가격인 iNAV 오류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제도 정비와 시스템 마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사진=이미지투데이

국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구조적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시간 거래를 전제로 하는 ETF에서 기준 가격인 iNAV(기준가) 오류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무관리 시스템·데이터 연동 체계·감시 장치 등 전방위적인 제도 정비와 시스템 전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사무관리사인 한국펀드파트너스는 170개 ETF에 대해 배당금 정보를 이중으로 반영하면서 iNAV를 실제보다 과도하게 산출했다.


당시 일부 투자자는 기준가보다 약 1% 비싼 가격에 ETF를 매수하는 피해를 입었다. 불과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에는 삼성자산운용 'KODEX 단기채권' ETF에서 실시간 가격 데이터를 공급하는 벤더사의 시스템 오류로 iNAV 산출이 일시 중단됐다는 공시가 나왔다. 사고의 원인과 주체는 달랐지만 모두 iNAV 산출 시스템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iNAV, ETF '나침반'인데… 구조는 허술

iNAV는 ETF가 보유한 기초자산의 실시간 가치를 반영한 '적정 가격'으로 투자자의 매매 판단에 기준이 되는 핵심 지표다. ETF는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거래되지만 실제 가치는 그 안에 담긴 기초자산(주식·채권 등)의 총합으로 결정된다. 이에 투자자들은 ETF가 현재 얼마가 적정가인지 판단하기 위해 '기준가'인 iNAV를 참고한다.

iNAV는 ETF의 회계와 운용 데이터를 관리하는 사무관리사가 실시간으로 계산한다. 이때 주가·환율·배당금 등 실시간 데이터는 '데이터 벤더사'로 불리는 외부 업체가 공급한다. iNAV는 벤더사(데이터 제공자)와 사무관리사(계산 주체)가 함께 작동해야만 정확하게 산출되는 구조다.

이번처럼 벤더사나 사무관리사 중 어느 하나라도 오류가 발생하면 투자자는 잘못된 기준가를 믿고 ETF를 매수·매도하게 되고 괴리율은 커지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마치 고장 난 저울이 무게(가치)를 잘못 측정했음에도 가격표를 그대로 믿고 거래에 나서는 것과 같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TF 시장은 전날 기준 964개 상품, 순자산 188조원 규모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ETF의 실시간 가치 산출, 회계 관리, 가격 연동 등 핵심 인프라는 2000년대 중반 수준에서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문제는 iNAV 오류가 발생해도 투자자가 이를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달 사고 당시에도 일부 유동성공급자(LP)는 오류를 인지하고 낮은 호가를 제시해 시장에 참가했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이를 알지 못한 채 기준가를 믿고 거래에 나서며 상대적인 피해를 입었다.
투자자들은 ETF가 현재 얼마가 적정가인지 판단하기 위해 '기준가'인 iNAV를 참고한다./사진=이미지투데이
투자자들은 ETF가 현재 얼마가 적정가인지 판단하기 위해 '기준가'인 iNAV를 참고한다./사진=이미지투데이


ETF 시장에서 iNAV 산출은 사무관리사와 벤더사가 나눠서 담당하지만, 오류 발생 시 책임 구조는 모호하다. 데이터 오류로 인한 피해가 발생해도 벤더사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고 사무관리사는 배상책임보험을 통해 보상하더라도 결국 운용사·증권사가 선 보상 후 구상하는 구조라 절차가 복잡하다.

여기에 운용사 대부분은 iNAV 산출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사무관리사와 벤더사에 의존한 채 실시간 모니터링만 진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iNAV 오류를 자동으로 탐지하거나 차단할 수 있는 자체 시스템은 사실상 구축돼 있지 않아 문제가 발생해도 즉각 대응이 어려운 구조다. 이에 따라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행 제도상 iNAV 오류가 발생해도 ETF 거래를 일시 중단하거나 가격 산출을 보류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단순 '주의 공시'만으로는 시장 왜곡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iNAV 산출 체계 전반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시스템 전수 점검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iNAV 실시간 오류 탐지 시스템 구축 ▲벤더-사무관리사 간 이중 검증 체계 ▲사고 발생 시 거래 제한 메커니즘 도입 등도 논의 대상이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ETF 시장이 1000개 종목에 육박할 만큼 커졌지만, 사무관리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 단순 펀드 운용 기준에 머물러 있다"며 "iNAV 산출, LP 동시호가 지원 등 복잡한 업무가 늘어나는 만큼 사무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전반적인 인프라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