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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두고 정치권이 거리로 나서며 찬반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는 각자의 지지층을 향해 장외 투쟁을 이어가는 한편 선고 결과를 둘러싼 불복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탄핵심판이 단순한 정권 심판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작동 여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헌법재판소가 사회 통합의 메시지를 내놓을 지도 주목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친윤(친윤석열)계 중심으로 의원 60여명이 지난 2일부터 헌법재판소 인근 서울 안국역 앞에서 24시간 탄핵 반대 릴레이 시위에 돌입했다. 전체 여당 의원 108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탄핵 기각과 각하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이 조속히 직무에 복귀해 멈춰선 국정을 재정비하고 민생을 돌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당론은 기각"이라며 당 차원의 장외 투쟁을 공식화했고 나경원 전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탄핵 인용은)'떼법주의'의 승리이며 헌법 질서의 붕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거리로 나왔다. 지난 2일부터 광화문에서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철야 농성과 탄핵 찬성 집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선고일인 오는 4일까지 장외 투쟁을 지속할 방침이다. 이날 박찬대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안국역 인근 탄핵 찬성 집회에 동참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판결 승복 여부를 묻는 질문에 "승복은 윤석열이 하는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탄핵소추 기각은 헌법에 대한 전면 부정"이라며 "윤 대통령의 복귀는 곧 대한민국의 파멸"이라고 직격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스템 작동의 시험대가 될 것"
정치권이 앞장서 극단적 대결 구도를 부추기면서 오는 4일 내려지는 헌재의 선고가 통합의 계기가 될지 혹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지 주목된다. 조속한 헌정질서 회복을 갈망하는 국민 여론에 헌재는 그 동안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헌재 내부의 심리 지연과 소통 부재가 갈등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있다.윤 대통령 탄핵심판은 심리 기간만 약 4개월, 서면·증인신문만 80건을 넘기며 '역대 최장 심리'로 기록됐다. 하지만 헌재는 변론 종결 이후 한 달 넘게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침묵을 이어갔다. 그사이 온갖 정치적 해석과 음모론, 억측이 나돌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진영 대결과 국론 분열이 증폭돼 '헌재가 정치권 눈치를 본다'는 비판 마저 제기됐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대통령은 즉시 파면되고 60일 이내 대선이 치러진다. 반면 기각되면 윤 대통령은 곧바로 직무에 복귀한다. 헌재의 최종 결정에 따라 정치적 파장과 사회적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헌재가 선고 과정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메시지를 내놓을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실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시에는 일부 재판관들이 '보충의견'을 통해 갈라진 민심을 위로하고 통합을 촉구한 바 있다. 보충의견은 다수의견의 결론에 동의하면서도 결론에 도달하는 재판관 개인의 생각을 별도로 밝히는 것이다. 2017년 3월 박 전 대통령 탄핵선고 때는 김이수·이진성·안창호 재판관이 보충의견을 통해 국민통합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보충의견에서 "국가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는 신속한 대응과 국민과의 공감으로 희망을 줘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을 강조했다. 이는 다수의견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세월호 참사 책임을 보충의견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상처받은 국민을 다독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안창호 재판관은 "이 사건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의 권력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박 전 대통령의 위법 행위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능케 한 구조적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짚었다. 대통령 개인의 책임을 넘어 헌정 시스템의 한계에 주목해 지지자들에 대한 배려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전문가들은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단지 한 정치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안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판단, 그 결과에 대한 국민의 승복까지 시계태엽처럼 맞물린 고도의 민주주의 장치들이 헌정질서 회복이라는 대명제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고 결과와 무관하게 '내란'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내란 행위와 관련된 진상조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단순한 처벌을 넘어 진실을 밝히고 그에 따라 사회 제도와 문화를 정비하는 개혁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탄핵심판 선고가 분열의 골을 메우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헌재 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 결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특히 선고 결과에 대한 국민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수의견보다 '공통된 한 목소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전 헌법연구위원을 지낸 노희찬 변호사는 "헌재 재판관들의 판단이 만장일치로 나올 경우, 결과에 대한 불복 여지를 최소화하고 사회적 충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법리적 정당성과 국민적 수용성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