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이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플로깅 활동에는 매번 20명 이상의 임직원이 참여하며 호응하고 있다./사진=머니S 전민준 기자
교보생명이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플로깅 활동에는 매번 20명 이상의 임직원이 참여하며 호응하고 있다./사진=머니S 전민준 기자

"회사 바로 옆에 이런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니요. 역사 공부 하면서 친환경 활동도 할 수 있는 플로깅 활동에 참여할 때 마다 뿌듯함을 느낍니다."

지난 3월12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교보생명 한 직원은 기자가 '꽃보다 플로깅' 활동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 같이 말했다. "평소엔 출퇴근길에 무심코 지나치던 골목이지만 이날만큼은 특별해 보인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꽃보다 플로깅은 교보생명이 2023년부터 정기적으로 운영 중인 ESG 실천형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임직원들이 역사와 문화가 깃든 길을 걸으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이 활동에 기자도 함께했다.

이날 첫 코스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초입에 있는 승동교회였다. 붉은 벽돌이 고풍스럽게 자리한 이곳은 조선시대 백정들을 위한 선교가 시작된 곳이다. '백정교회'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이런 곳이 회사 근처에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함께한 교보생명 직원이 감탄한다.


기자 역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바라본 교회의 외관이 단순한 건물이 아닌 시대와 사연을 품은 장소처럼 느껴졌다.

승동교회 내부에 있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지나자 작은 돌담 너머로 낯선 표지석이 보였다. 바로 석정보름우물이다.

석정보름우물은 조선 중기부터 북촌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했다. 조선 궁궐과 종묘를 제외하면 서울 도심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로 알려져 있다.

"한 달의 보름은 맑고, 보름은 흐려서 '보름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네요. 예전엔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해요." 해설사의 설명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과거 이곳에서 물을 길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우물을 지나며 기자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봄 햇살은 따뜻했지만 집게를 든 채 허리를 숙이고 걷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쓰레기봉투는 금세 묵직해졌고 거리엔 생각보다 많은 흔적들이 쌓여 있었다.
사진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쓰레기를 줍는 교보생명 임직원들 모습./사진=머니S 전민준 기자
사진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쓰레기를 줍는 교보생명 임직원들 모습./사진=머니S 전민준 기자

코스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서울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인근 골목. 점심시간 이후 직장인들의 흡연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이날도 보도블록 틈새마다 담배꽁초가 박혀 있었고 길가엔 캔, 커피컵, 비닐 포장지가 뒤섞여 있었다.

"진짜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네요." 직원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기자도 함께 집게를 바쁘게 움직이며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 길을 매일 지나다니며 이 풍경을 못 본 건가, 아니면 모른 척한 걸까."

쓰레기를 꽤 많이 담고 난 뒤 도착한 불교중앙박물관. 조계사 옆에 조용히 자리한 이 공간은 삼국시대 불상부터 근대 불화까지 전시된 깊이 있는 문화 공간이었다. "회사 가까이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참여자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플로깅이 아니었다면 결코 발 디디지 않았을 공간.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 속에 문화와 역사가 숨어 있었고, 그것들을 만나는 순간들은 뜻밖의 울림을 남겼다.

'꽃보다 플로깅'은 단순한 청소 활동이 아니다. 교보생명은 이 활동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면서 환경까지 보호하는 ESG 실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서울시 동대문구와 협력해 '메타세콰이어 숲길 조성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임직원 한 팀이 플로깅에 참여할 때마다 서울 중랑천에 메타세콰이아 나무가 심어진다. 지금까지 약 100그루를 식재했으며 이 프로젝트는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마지막 코스인 우포도청 터에 도착했을 때 기자의 손에 들린 쓰레기봉투는 제법 묵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은 건 몸의 피로가 아닌 마음의 변화였다.

골목길의 숨은 역사와 마주했고 시민의 무심함이 만든 흔적들과 눈을 맞췄고 문화재 안에서 고요한 순간도 경험했다.

단지 쓰레기를 줍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치는 모든 것에 대해 '다시 보기'를 한 시간이었다.

이날 한 임직원의 말이 오래 남는다. "이 길을 매일 걸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기억에 남을 길'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