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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9일(현지시간) 발효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산업계가 안도하지만 위기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존에 발효된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는 유효한 데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점 역시 한국에 중장기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어 리스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저는 90일간의 유예 기간을 승인했으며 이 기간에 상호관세를 10%로 대폭 낮췄다"면서 "이 조치는 즉시 발효된다"라고 밝혔다. 단 보복 대응에 나선 중국에 대해서는 상호관세율을 125%로 재차 인상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번 관세 유예조치가 각국과의 협상 때문이라고 전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75개국 이상이 우리에게 연락해왔는데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면서 "연락 하나하나에 대한 해답은 맞춤형이 될 것이라 시간이 걸리고 트럼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 관여하고 싶어해 90일 유예를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상호관세 유예 조치와 관련해 "'보복하지 않고 협력하겠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겠다'고 말하는 나라가 아주 많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기대하고 있고 이들 국가와 협상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유예 조치로 국내 수출기업들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기존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 중 가장 높은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데다 중국·베트남·인도 등 한국이 주요 생산거점을 두고 있는 지역에도 높은 관세율을 매겨 수출 경쟁력 둔화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25%의 상호 관세 부과시 한국의 연간 수출액 피해는 510억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애스턴대 조사 결과를 인용한 내용을 보면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 수출은 7.5%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관세 유예조치로 각국은 시간을 벌 수 있게됐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관세 취소가 아닌 유예인 데다 기존에 부과된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품목에 대한 관세는 유효하기 때문이다.
당장 현대차와 기아,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비롯해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는 관세에 따른 수익성 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커지는 점도 문제다. 미국의 상호관세에 맞서 중국도 보복관세를 매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대(對)중국 관세를 125%로 대폭 상향했다. 중국 역시 추가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전체 GDP의 68%에 달한다. 양국 통상환경 변화에 따라 막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의 무역제재로 중국 전자제품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면 중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의 반도체나 중간재 수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특히 중국이 미국의 수출에 대응해 희토류 등 전략 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국내 원자재 수급에도 문제가 생길수밖에 없다.
이에 유예기간 동안 정부 차원에서 대응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가 중요해진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는 만큼 민관이 연대해 미국의 관세에 대응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산업에는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에 대해 '협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으나 중국이 보복관세를 매기고 다른 나라의 반발도 커지면서 미국의 예상과는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며 "여기에 주식시장에도 문제가 생기는 등 후폭풍이 커지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관세 유예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의 다툼이 서로 끝까지 가겠다는 목적은 아닐 것"이라며 "일단은 싸워서 버텨보자는 분위기인 것 같으나 치킨게임으로 치닫게되면 서로 위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수밖에는 없다"며 "무엇보다 현재 부재 상태인 리더십을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