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에 국내 완성차 부품업계가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은 경기 평택항 자동차 수출 전용부두. /사진=뉴시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에 국내 완성차 부품업계가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은 경기 평택항 자동차 수출 전용부두. /사진=뉴시스

"뭘 논의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답답합니다. 욕만 나오는 상황입니다."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이 같이 토로했다.


이 업체는 현대자동차·기아에 핵심 완성차 부품을 납품한다. 현대차·기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에 타격을 입으면 부품 업계도 연쇄적으로 휘청거릴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상황을 섣불리 예단할 수 없어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짓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90일 유예에도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달라지는 건 없다고 설명한다.

완성차·부품 수출기업 초비상… 연쇄 타격 우려

10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오후 4시(한국시각 3일 새벽 5시)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Mutual Tariff)를 공식 발표하고 즉시 발효에 들어가면서 한국 완성차산업과 관련 부품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 또는 비관세 장벽에 맞서 미국도 유사하거나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의도가 깔렸다고 분석했다.


완성차와 완성차 부품은 이미 1962년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라 별도의 고율 관세가 적용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각)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 동안 전격 유예했지만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25%의 고관세 적용을 받고 있어 완성차와 완성차 부품 등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은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본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전체 자동차 수출의 49.1%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연간 수출액금은 51조원에 달한다.

현대차·기아, GM(제너럴모터스)한국사업장 등 주요 완성차업체는 물론 수 만 곳이 넘는 관련 부품업체들도 대미 수출 비중이 높아 연쇄 충격을 떠안게 됐다.

현대차·기아는 관세 여파에도 당분간 미국 내 가격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한 HMGMA(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거점으로 ▲앨라배마(현대차) ▲조지아(기아) 기존 공장과 함께 미국에서 연간 100만대 생산체제를 완성했다.

HMGMA는 앞으로 20만대를 추가 증설해 최대 50만대까지 생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생산규모는 120만대 이상으로 확대된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 내 31조원 투자 계획과 함께 현지 생산 등을 확대해 수출 관세를 최대한 피해간다는 전략이지만 생산시설 증설 등은 당장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GM한국사업장은 전체 생산 물량의 85%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 수익성 악화에 직면할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총 49만9559대를 판매했고 약 42만대가 미국 시장 수출 물량이다. 인천 부평공장 철수설까지 지속해서 제기된다.

현대차·기아와 GM한국사업장이 가격 인상과 수출 타격 등에 직면할 경우 이들 업체와 연관된 수 만 곳의 부품업체까지 연쇄 타격이 우려되는 이유다.
국내 완성차 부품업계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에 대해 정부의 장기적인 대응 전략 마련을 요청했다. /사진=로이터
국내 완성차 부품업계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격에 대해 정부의 장기적인 대응 전략 마련을 요청했다. /사진=로이터

부품업계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원 절실"

"관세 유예고 뭐고 현대차·기아나 GM은 글로벌 기업이라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지만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북미공장이 없거나 멕시코에 공장이 있는 업체는 이전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각) 오전 12시1분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 약 13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 동안 전격 유예했지만 완성차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하며 "장기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직접 전략을 수립해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조치로 한국은 일단 90일 동안 25% 상호관세 대신 지난 5일 발효된 10% 기본관세만 적용받게 됐지만 완성차와 부품 등은 등 품목별 관세가 그대로 유지된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여파로 한숨짓는 완성차 부품업계에 '자금 지원' 카드를 꺼냈다. 관련 수출기업이 입을 당장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와 주요 경제 기관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로 인해 한국의 전체 수출금액이 최대 7%, 약 74조원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완성차·부품 산업부터 정책금융 등 3조원의 긴급 유동성 자금을 추가 투입키로 했다. 수출바우처를 1000억원 이상 늘리고 수출국 다변화를 위해 한·일·중 FTA(자유무역협정) 등 주요국과의 협정 논의도 진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3조원의 긴급 유동성 투입과 함께 내년 정책금융 자금을 기존 13조원에서 15조원으로 2조원 늘리기로 했다.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은 위기 대응 특별 대출프로그램을 신설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오는 11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관세 피해를 본 중소기업에는 내년 2500억원을 배정한 '긴급경영안정자금'도 확대키로 했다.

이밖에 정부는 제조사 할인 금액에 연동하는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올 상반기(1~6월)에서 연말까지 연장한다. 정부 매칭지원비율도 기존 20~40%에서 30~80%로 대폭 늘렸다. 신차 구매 시 개별소비세 탄력세율도 5%에서 3.5%로 낮추는 추가 지원까지 검토한다.

완성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자금 지원책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위기 요인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불안감이 가득하다"고 짚었다. 이어 "부품업종도 나름대로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대비해 다양한 먹거리 확보에 나섰지만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발목이 잡혔다"며 "정부는 당장의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촘촘한 전략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