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개인용 컴퓨터(PC)의 문을 연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선구자,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이 향년 92세의 일기로 14일 별세했다.사진은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의 생전 모습. /사진=삼보컴퓨터
국산 개인용 컴퓨터(PC)의 문을 연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선구자,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이 향년 92세의 일기로 14일 별세했다.사진은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의 생전 모습. /사진=삼보컴퓨터

대한민국 1세대 벤처기업인이자 국산 개인용 컴퓨터(PC)의 개척자,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그는 한국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초석을 다진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고인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원과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하며 첨단 전자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당시 그는 국내 최초로 한글 입출력이 가능한 터미널 시스템을 개발하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행정 시스템 전산화 사업에도 참여하며 정보기술(IT) 산업의 기틀을 닦았다.


1980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삼보컴퓨터를 창업한 이 회장은 1981년 국내 최초의 상용 PC인 'SE-8001'을 개발했고 이듬해에는 애플2와 호환 가능한 '트라이젬20'을 출시하며 본격적인 국산 PC 시대를 열었다. 삼보컴퓨터는 1990년대 '국민 PC'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국내 컴퓨터 시장을 이끌었고 한국 IT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장은 인터넷 분야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96년 한국전력과 함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 '두루넷'을 설립해 회장직을 맡았다. 두루넷은 국내 최초로 케이블 모뎀 기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상용화하며 전국 가정과 기업에 인터넷을 보급했다. 1999년에는 국내 ISP 중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기도 했다.

생전 미래 인재 양성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진다. 1987년 설립된 인성교육 단체 '박약회'와 인연을 맺은 건 1994년, 삼보컴퓨터가 가파르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초대 회장인 김호길 포스텍 총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유학자 모임에서 출발한 박약회는 군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성교육, 농촌에서의 향약 실천 운동으로 확장됐고 지금까지 누적 수료 인원이 1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생전 "기술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만드는 일에 더 매력을 느낀다"며 "인성교육은 누구나 말로는 강조하지만 정작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공로는 말년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2021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정보통신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며 "89년을 살아오며 정부에서 받은 첫 상"이라며 "IT 분야에서의 노력을 정부가 드디어 인정해줘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존심이 강한 인물로도 유명했던 그는 정부 고위직 제안을 거절한 일화로 업계에 회자됐다. 생전 기자와의 사석에서 "정부에서 국장급 직위를 요청받았지만 거절했다"며 "그때 자존심을 조금만 굽히고 들어갔다면 한국 컴퓨터 산업이 지금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회고했다. "인천에 대규모 소프트웨어(SW) 단지를 세우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2000년대 이후 삼보컴퓨터와 두루넷이 시장 변화 속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한국 IT 산업 성장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장남 이홍순 전 삼보컴퓨터 회장, 차남 이홍선 전 두루넷 부회장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7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