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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3년 뒤부터 미국에서 수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 가운데 일부는 미국산 LNG운반선을 사용하도록 하는 규제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조선사들이 미국에서 LNG선을 건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업계에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사장된 미국의 조선업 인프라와 높은 인건비, 적합한 조선소 부재 등이 이유로 지목된다.
23일 미 무역대표부(USTR)의 '중국의 해양, 물류 및 조선 부문 지배력 강화에 대한 USTR 301조 조치'에 따르면 2028년 4월부터 전체 LNG 수출량 중 1%를 미국산 LNG선으로 운송해야 한다. 2047년까지 이 비중은 15%로 늘린다.
USTR은 미국산 선박으로 인정받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도 제시했다. LNG수출에 필요한 개조가 미국 조선소에서 이뤄져야 하고 주요 부품이 미국에서 생산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2029년부터는 미국산 선체·상부구조 부품과 추진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일부 외신은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에 주목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날 USTR 규제로 한국의 한화해운(Hanwha Shipping)이 첫 미국산 LNG 운반선을 건조할 기회를 잡게 됐다고 보도했다. 한화해운은 한화오션이 설립한 미국 법인으로 한화그룹 자회사다.
이번 USTR의 규제는 빠르게 성장 중인 중국 조선업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영국 선박가치평가업체배슬스밸류에 따르면 중국의 LNG선 수주 점유율은 2022년 30%에서 지난해 38%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수주 점유율은 70%에서 62%로 줄었다. 한국의 점유율이 중국으로 넘어간 셈이다. 한국 조선사들이 약 3년 치 일감을 수주하며 도크를 채우자 중국이 나머지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격차가 좁혀졌다.
업계 안팎에선 이번 규제가 현실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조선업 인프라의 부재다. 미국은 1920년 미국 내 화물 운송에 사용되는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존스법을 제정했다. 자국의 조선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미국 조선업이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관련 기자재 업체의 공급망도 붕괴됐다.
현재 생태계라면 미국 조선소에서 LNG선을 건조하기 위해선 주요 기자재를 한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이마저도 미국산 부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재당할 우려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부품 역시 미국에서 생산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인력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지속된 인플레이션으로 인건비 상승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인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 전반에서 로봇 도입을 확대하고 있지만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으로 사람의 개입이 필수다.
숙련공을 찾기 어렵다는 것도 부담이다. LNG선은 대표적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타 선종보다 높은 기술 난도를 자랑한다. 한국이 중국을 제치고 LNG선 시장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의 숙련된 노동자들과 꾸준한 R&D 덕분이었다. 미국 노동자들을 한국 숙련공처럼 만들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어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
미국 내 조선소 중 대형 LNG선을 건조할 수 있는 곳을 찾기도 어렵다. 시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LNG선 표준 선형은 17만4000㎥급으로 길이만 약 300m에 달한다. 서울 남산타워(237m)와 63빌딩(249m)을 옆으로 눕힌 것보다 크다. 대형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선 초대형 도크가 필요하지만 미국엔 이같은 시설을 갖춘 조선소가 없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 역시 17만4000㎥급 LNG선을 건조하긴 역부족이란 평가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미국 조선소 인수 혹은 전략적 지분 투자 등 여러 안을 고려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필리조선소 활용 방안을 놓고 다방면으로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