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정부 세법 개정안이 발표된 이후 거액자산가들을 상담하는 PB센터에는 모처럼 상담의뢰가 빗발쳤다. 금융소득종합과세 한도가 현행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하향 조정되고, 즉시연금의 과세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자산가들이 바짝 긴장한 것. 세법 개정안에 따라 재테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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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뉴스1 이정선 기자
◆ 한시적 세테크 상품 편입 붐 … 포트폴리오 수정
"정기예금 해약하고 즉시연금으로 갈아탈게요."
불과 한달 전에 3%대 정기예금에 가입했던 대치동의 자산가 A씨는 이자 손해를 감수하고 최근 예금을 해약했다. 지금 즉시연금에 가입하면 세법이 바뀌더라도 절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계획에 없던 '재테크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수정한 것이다.
신동일 국민은행 대치PB센터 PB팀장은 "지난해만 해도 즉시연금은 장기상품이라 선뜻 가입을 안 하던 사람들도 뭉칫돈을 가지고 가입을 문의해온다"고 전했다. 평소 신중하게 투자를 결정하던 자산가들도 세제 혜택 축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법 개정안 발표 이후 '최대 수혜상품'인 즉시연금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국민은행의 지난 7월 즉시연금 판매액은 하루 47억원 수준이었으나, 세제개편 발표 직후인 9~10일에는 하루 평균 200억원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또한 지난 4~7월 하루 평균 20억원의 즉시연금을 판매해온 삼성증권의 매출도 지난 9~13일에는 평소의 5배가 넘는 하루 평균 100억원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2015년 발행분부터 원금상승분에 대해 과세가 시작되는 '물가연동국채(이하 물가채)'도 벌써부터 과열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물가채 지표물인 11-4호(2011년 6월10일 발행, 15일 현재 발행잔액 3조4000억원) 금리는 지난 8일 연 0.80%에서 13일 0.65%로 크게 떨어졌다. '사자'는 수요가 늘면서 며칠 새 수익률이 0.15% 급락한 것이다. 채권금리는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물가채 금리가 폭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채권 가격이 급상승했다는 의미다.
세제혜택이 사라지기 전에 물가채를 사두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채는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지수에 연동해 원금이 불어나는 상품으로, 그동안 원금 상승분에 대해서는 따로 세금을 매기지 않고 분리과세 혜택이 있기 때문에 주요 절세상품으로 꼽혀왔다.
오상훈 대신증권 리테일채권부 팀장은 "요즘 금리가 많이 낮아져서 지금 사도 괜찮을까 묻는 문의가 많다"며 "비록 가격이 단기간 급등했다는 악재가 있지만 세법 개정 후 갈수록 각광받을 수밖에 없어 지금 매수를 고려해도 좋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격 변동성이 커진 만큼 만기 보유 전략으로 가져가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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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세법개정안 관련 당정협의에서 이한구 원내대표, 황우여 대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왼쪽부터)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_뉴스1 박정호 기자
◆ 사전증여 활성화 등 세제개편 여파 '기대 이상'
이번 정부의 세법 개정 여파가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특히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내려가면서 새롭게 과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들의 우려가 크다. 이들은 아직 남아 있는 절세 상품에 최대한 많이 가입해 과세 대상을 줄이는 노력은 물론 사전 대비 차원에서 증여를 통한 자산이전도 검토하고 있다.
증여를 통한 자산이전의 경우 부부간 증여공제(10년간 6억원 한도)를 비롯해 자녀에 대한 증여공제(미성년자 10년간 1500만원, 성인 10년간 3000만원)를 적절히 활용하면, 금융소득 분산으로 인한 효과적인 절세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병민 우리은행 목동남지점장은 "세법 개정안 발표 후 사전증여에 대한 문의가 평소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며 "한꺼번에 상속하는 것보다 나눠서 증여하면 세금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증여플랜에 대한 검토요청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세제개편안은 8~9월중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월 말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세제개편안 확정되면, 근로소득자 세금폭탄?
분당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연봉 5500만 원을 받는 4인 가족의 가장인 A씨. 그는 '2012년 세법 개정안'이 확정되면 39만원 정도 세금을 추가로 내게 될 전망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최근 2012년 세법 개정안에 따라 예상한 시나리오다.
A씨의 신용카드 사용액(대중교통 제외)이 약 2411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소득공제 축소로 인해 내년에는 7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한다. 또 상승한 명목임금액 165만원만큼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32만원 추가부담 해야 한다는 것. 한국납세자연맹은 이러한 세제 개편으로 근로소득자 대부분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2012년 세법 개정안대로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축소(20% →15%)할 경우 근로소득자들이 추가로 부담할 세금은 연간 235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와 같은 분석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추가부담액은 1조1755억원으로, 이번 세법 개정으로 인한 세수증가액의 약 70%(1조1755억원)를 넘는다는 분석이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서민생계를 위협하고 빈부격차를 심화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간접세 비중을 낮추고 금융소득 과세정상화, 종교인 과세 등 숨은 세원을 발굴해 소득세 비중을 올리는 방향으로 조세를 개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