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뭡니까?" 지난 7월26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하계 포럼 행사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최근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그 개념이 모호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기존 법률로도 경제민주화는 충분히 성취할 수 있다"며 강도높은 발언을 했다.

대중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인기 발언'에 대해 최고 경제단체 수장으로서 소신있는 소리를 낸 것이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취임 1년6개월여를 맞은 지금 허 회장을 둘러싼 재계 안팎의 목소리는 '칭찬'보다 '질타'가 더 많은 분위기다.

해체론에 상생론…겹시름 쌓인 許

사진_뉴스1 이광호 기자
 
◆툭하면 점화되는 '전경련 해체론'

당장 허 회장의 이번 발언은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경제민주화 등 재계의 굵직한 현안에 대해 전경련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기인한 조치였다고 해도 반 대기업 정서가 만연한 상황에서 '경제민주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여론이 모아진 경제민주화는 '1대 99'의 불평등 구조를 없애자는 게 근본 취지"라며 "재계 맏형격인 전경련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방법론을 찾기에 앞서 공식선상에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거부하는 것은 재계 스스로 시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에서 불거진 이 같은 경제민주화 바람은 현재 허 회장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악재'로, 툭하면 점화되는 '전경련 해체론'과도 상호작용을 내고 있다. 특히 연말 대선을 앞둔 상황과 맞물리면서 전경련 위상을 비판하고 해체를 요구하는 강도가 어느 때보다 거세다.

지난 3월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은 위원장직을 물러나면서 "필요에 따라 전경련의 발전적 해체 수순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주장해 전경련 해체론에 불을 지폈다.

이어 7월에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당시 경제민주화 개념 도입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김종인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이 전경련 해체 목소리에 힘을 냈다. 그는 "전경련이 쓸데없이 자꾸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소리를 내면 존재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전경련에 대한 무용론은 국회 차원에서도 제기됐다.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전경련에 요청했는데 전경련은 무책임하게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의 과거 보도 해명자료만 제출했다"고 비판했다. 국회는 전경련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경위 차원에서 견제 방안을 강구하기로 해 파장이 예상된다.

전경련도 전경련이지만 허창수 회장은 요즘 자신이 총수로 있는 GS그룹과 관련해서도 좋지 않은 평판을 얻고 있다. 
 
 
해체론에 상생론…겹시름 쌓인 許

서울 소곡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지식경제부-대기업 성과공유 자율추진 협약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사진_뉴스1 박세연 기자)

◆GS그룹은 '상생경영' 역행?

우선 수입차 딜러사업과 관련해 말이 많다. 허 회장은 현재 친인척 지분이 100%로 돼 있는 수입차 딜러법인인 센트럴모터스의 2대주주다. 허 회장의 작은아버지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의 장녀 허인영 승산 대표가 지분 18.67%를 보유하며 최대주주이고 그 뒤를 이어 허 회장(11.92%), 허준홍 GS칼텍스 팀장(10.11%), 허정수 GS네오텍 회장(9.76%)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모든 지분을 GS그룹 오너일가가 소유한 구조다.

그런데 올초 재벌가의 수입차 딜러사업 확장과 관련해 좋지않은 시선이 많아지자 두산그룹 등이 수입차사업을 접기로 한 것과 대조적으로 허 회장 등 GS오너일가는 여전히 발을 빼지 않아 비난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센트럴모터스가 지난해 421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19억8000만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GS그룹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허 회장이 수입차사업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의 수장이 국민정서상 재벌가의 수입차사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 사업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 자체가 모양새가 좋지않다"고 말했다.

수입차사업과 함께 GS그룹 자회사들이 중소상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얘기도 허 회장에게 '책임론'이 씌워지는 부분이다. GS칼텍스의 자회사인 GS넥스테이션은 지난해 말 한국토요타자동차와 제휴를 맺고 토요타 중고차를 판매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여기에 편의점사업의 중소상인 영역 침해도 논란거리다. 현재 GS그룹 비상장사 중 식료품 제조회사인 후레쉬서브는 GS25에 김밥이나 샌드위치 등을 납품하고 있는데 이 부분 때문에 지역상인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GS리테일이 100% 지분을 보유한 후레쉬서브는 편의점업계 2위인 GS25를 통해 전체 매출액의 90% 이상을 올리고 있어 재벌가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받는 상황이다.

전경련과 GS그룹의 양 수장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허창수 회장. 가을을 앞둔 시기지만 그의 '무더위'는 올 들어 유독 길어보인다.
 
허창수도 '초대 못한' 구본무
 
지난해 2월 허창수 회장이 전경련 제33대 회장으로 추대됐을 당시, 재계의 가장 큰 관심은 10여년 간 전경련과 등을 돌린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참여' 여부에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LG그룹과 57년간 동업관계를 유지해오다 지난 2004년 계열분리한 GS의 허 회장이었기에 구본무 회장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지난 1999년 재계 빅딜 당시 LG반도체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에 빼앗기다시피하면서 그 중심에 전경련이 있다고 판단, 그 이후부터 10년이 넘게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불참하고 있다. '전경련이 재계 대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굳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나갈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안타깝게도 취임 이후 1년6개월이 지났지만 구 회장의 참여와 관련해 허 회장에 건 '기대'는 여전히 물거품이다. 전경련을 향해 구 회장은 아직도 뒷모습만 보이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