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김 교수처럼 노골적으로 용산개발을 '실패한 도시 성형'이라고 단정한 학자는 드물었다.
책이 출간된 시점에는 용산개발을 실패라고 단정하기엔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개발사업의 핵심인 111층 랜드마크타워 시공사 선정을 두고 '특혜 의혹'이 불거질 만큼 시공 경쟁이 치열했다. 용산역세권개발은 랜드마크타워를 코레일에 4조2000억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해 자금조달 문제를 해결했다며 홍보했다. 언론은 63빌딩을 시작으로 타워펠리스와 하이페리온을 언급하며 초고층빌딩 시대가 도래했다고 화답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책을 다시 들춰보니 현재 드러난 용산의 한계와 문제점이 예언서처럼 고스란히 적시돼 있다. 그는 ▲2200여가구의 서부이촌동 주민이 편입 계획 발표 때까지 어떤 형태로도 도시계획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 ▲전문 디벨로퍼가 아닌 출자사들이 디벨로퍼 역할을 한다는 점 ▲공익의 가치를 대변해야 할 시 정부가 방관했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마침 지난 3월21일 삼성물산이 코레일에 랜드마크 시공권을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책이 출간되고 인터뷰 한 기간은 삼성물산이 용산개발의 상징인 랜드마크타워의 시공권을 보유했다가 내놓은 시점과 일치한다. 사실상 파산절차를 앞두고 있는 용산개발의 한계와 책임, 해결책 등을 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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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희 기자 |
◆디벨로퍼 없는 개발, 책임자가 없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보스턴 상업용부동산 리서치회사인 PPR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해외의 대형프로젝트를 다각도로 분석한 경험이 있다. 해외에서도 흔치 않은 대형프로젝트가 용산 땅에서 진행된다고 하니 그로선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용을 파면 팔수록 의구심만 높아졌다.
"미국을 비롯해 해외의 대형프로젝트를 보면 디벨로퍼와 시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용산개발은 감시의 기능이 없었어요. 우리나라는 건설회사가 디벨로퍼 역할을 수행하더군요. 디벨로퍼는 건설비용을 줄여야 이익이고 건설사는 건설비용을 늘려야 하는 상충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잖아요. 건설회사는 당연히 눈에 보이는 이익, 즉 공사비를 늘려 수익을 보전하겠지요."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에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완공 때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부동산개발회사다. 시행자의 발주를 받아 기한 내에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책임이 끝났을 때 돈을 받아 떠나면 관계가 종료되는 식이다.
국내 대형프로젝트 개발에 디벨로퍼는 없다. 대신 출자사로 구성된 자산관리회사(AMC)가 그 기능을 대신한다. 전문성도 떨어지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 그는 만약 전문 디벨로퍼가 용산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경기 침체에 따른 대응전략을 마련해 효과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세훈 전 시장의 야욕이 화 불렀다
그는 용산 프로젝트 실패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원흉'이라는 단어 쓰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다. 당초 계획과 달리 2200가구의 서부이촌동 주민을 이 프로젝트에 포함시킨 것이 오 시장의 가장 큰 실수였다는 지적이다.
"많은 출자사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지역주민을 무모하게 포함시킨 것이 프로젝트가 실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입니다. 뉴욕 배터리파크도 30~40년이 걸렸는데 용산프로젝트 기간을 10년으로 잡았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당시 용산역세권개발은 사업계획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의 눈치를 봐야 했다. 오 전 시장이 야심차게 기획했던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에서 용산 개발은 좋은 재료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최근 오 전 시장은 용산프로젝트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일자 주민동의 57.1%를 얻어 서부이촌동을 개발지구에 편입시켰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서부이촌동 편입에 반대했던 김진애 전 민주당 의원은 오 전 시장이 미리 통합개발을 통보하고 원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했음에도 도시개발법을 바꿔 추진했다고 반박했다. 8억원인 25평형 아파트가 개발되면 30억원으로 뛴다고 얘기해 받은 주민동의 비율이 겨우 절반만 넘은 것은 사실상 개발을 원치 않는 주민이 더 많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민피해 보상하고 단계개발 나서야
용산 개발 실패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입은 곳은 어디일까. 무엇보다 김 교수는 개발구획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주민이 가장 큰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반면 인허가를 내준 서울시는 가장 큰 가해자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피해 주민에 대한 보상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외국의 사례처럼 재개발청을 두고 시의 인허가권과 개발기능까지 일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에는 3만명 도시에도 재개발청이 있습니다. 인구 1000만의 서울시가 중국 상하이의 한 구에서 하는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대형부동산 개발프로젝트는 고위험·고수익을 전제로 한다. 성공한다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AMC에 포함된 민간투자사들에게도 프로젝트 실패에 따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지로 일컬어지는 뉴욕의 배터리파크나 성공한 수변개발의 상징인 런던의 커너리워프를 개발한 올림피아앤요크사도 부도가 났습니다. 실패한 AMC는 파산하는 것이 맞습니다. 실패에 대한 교훈을 줘야 합니다."
그는 현재 AMC에 포함된 회사의 의사결정권이나 경영권을 빼앗고 새로운 디벨로퍼를 찾아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전제는 단계적 개발이다.
"용산 부지는 부동산 개발에 있어 매우 깨끗한 땅입니다. 서울시 혹은 SH공사와 코레일 주도로 코어 중심의 단계적 개발을 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1단계가 성공한다면 더 많은 디벨로퍼가 몰릴 겁니다."
6단계 개발사업으로 변경했을 때 단계별 사업비 5조원 중 디벨로퍼의 몫으로 0.1%만 지급한다고 해도 흥행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상암DMC 개발사업 역시 코어가 없어 실패했다면서 용산역을 중심으로 단계개발이 필요하고, 서부이촌동 개발은 가장 마지막에 진행하는 것이 순서라고 덧붙였다.
☞ 김경민 교수 프로필
1995년 서울대 지리학과 졸업/1997년 효성데이타시스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2001년 오라클 코퍼레이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2002년 UC 버클리대 정보시스템 석사/2006년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보조연구원/2007년 보스턴 상업용부동산 리서치회사 PPR 선임연구원/2008년 하버드대 도시계획·부동산 박사/2009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전공 교수
1995년 서울대 지리학과 졸업/1997년 효성데이타시스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2001년 오라클 코퍼레이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2002년 UC 버클리대 정보시스템 석사/2006년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보조연구원/2007년 보스턴 상업용부동산 리서치회사 PPR 선임연구원/2008년 하버드대 도시계획·부동산 박사/2009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전공 교수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