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모양새가 용산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리면서 용산구 일대 주택이 경매시장에 쏟아지고 있어서다. 사업 전망을 기대하고 큰 돈의 대출을 받았던 주민들은 개발사업 부진에 따른 집값 폭락을 경험하면서 경매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경매시장에 나온 이 물건들이 집주인의 채무를 탕감시켜줄 만큼 여건이 좋지 않다는 데 있다. 최근 용산 일대의 경매물건을 살펴보면 주변지역에 비해 낙찰가율이 떨어지고 응찰자수도 적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지금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의견도 나온다. 과연 현재 시점에서 경매시장에 나오는 용산지역 주택들은 '시한폭탄'일까, 아니면 '긁지 않은 복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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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뉴스1 박지혜 |
◆용산 쇼크 여파 '떨이경매' 우수수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2·3월 용산구 소재 주거시설은 각각 50건씩 모두 100건이 경매시장에 나왔다. 지난해 월평균 38건보다 31% 많은 수준이다.
반면 낙찰가율은 떨어졌다. 올해 1월 69.9%로 떨어진 후 3월에는 65.7%까지 급락했다. 지난해 월평균 71.2%보다 5.5%포인트나 하락한 수준이다. 서울 전체 평균 낙찰가율 74.7%와 비교해보면 용산지역 낙찰가율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떨어졌는지 체감할 수 있다.
응찰자 수도 감소했다. 3월 경매 건당 평균응찰자 수는 2.9명으로 지난해 월평균 3.5명보다 소폭 하락했다. 서울 전체 경매 건당 평균응찰자는 5.2명이다. 아무리 싼값에 나온 매물이라도 '용산'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현재로선 불안감이 앞선다는 방증이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용산 개발사업의 무산으로 가장 직격탄을 맞은 곳은 한강로와 이촌동 일대다. 지난달 13일 용산 개발사업지구가 위치한 서부이촌동(이촌2동) 대림아파트 전용면적 85㎡의 법원 경매에서는 단 2명의 응찰자만이 손을 들었다. 낙찰가는 6억4800만원. 감정가 12억원에서 46%나 떨어진 금액에 집이 팔렸다.
그 전날 한강대로변 단독주택(전용면적 50㎡)의 경우에는 더 심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명의 응찰자만이 참가해 감정가 18억8825만원짜리를 7억8170만원에 낙찰 받은 것이다. 낙찰가율은 41%에 불과했다.
◆"지금이 적기" 추후가치 기대
대다수 경매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최근 경매시장에서 용산지역 매물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용산 개발사업의 무산이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떨어지는 집값과 경매 낙찰가 속에서 '그래도 용산은 용산'이라는 주장도 여전하다. 입지적 메리트가 여전한 데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추후 개발 수익성도 높다는 전망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용산 개발사업의 부도 여파가 직접적으로 강하게 파고든 이촌동과 한강로 일대를 제외한 한남동과 효창동 등 주변 다른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매 낙찰가율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지난달 21일 서울서부지방법원 경매1계에 나온 용산구 한남동 리첸시아 아파트 전용면적 84㎡는 5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감정가 6억4000만원에서 90% 가까운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주변 경매 주택들도 비슷한 수준에서 낙찰되는 사례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서울의 중심에 자리한 용산은 지금은 개발사업의 여파로 흔들리고 있지만 그 가치는 여전하다"며 "용산지역에서 싼값에 나오는 경매 주택들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투자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용산지역 경매 주택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업계 관계자들은 실수요자의 경우 경매 주택을 둘러싼 이해 관계나 재개발 시점 등만 잘 고려한다면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거품 더 빠져야" 비관론 여전
반면 용산에 대한 환상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6년부터 용산 개발사업을 중심으로 일대에 끼기 시작한 거품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용산지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경매 주택들은 위험요소가 많은 시한폭탄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법원 경매에 부쳐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아파트 14건의 평균채무액(근저당과 가압류 등)은 15억9302만원이다. 해당 아파트들의 평균감정가인 10억6964만원보다 5억원가량 많은 수준이다. 근저당과 가압류 등 주택에 설정된 여러 가지 권리들은 대부분 경매낙찰과 동시에 말소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된다.
용산지역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업계 관계자들은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국제업무지구 내 시범아파트 52㎡의 경우 용산 개발사업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직후였던 지난달 14일 5억원 이상짜리로 평가받던 아파트가 4번째 유찰돼 감정가의 41%인 1억8432만원까지 응찰가가 떨어졌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최근 용산지역 경매시장에는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나오는 주택 매물이 많다"면서도 "중·장기적인 투자관점에서만 이곳을 바라보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용산은 입지적인 메리트와 사업 수익성 이전에 아직도 빠져야 할 거품이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특히 "개발사업이 다시 진행된다 하더라도 6년 전 기대했던 수익성이 창출될지 이제는 물음표"라고 덧붙였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경매 물건을 사면서 기대하는 건 보상가치 혹은 거주 및 임대가치"라며 "용산지역 경매 주택들은 두가지 측면 모두에서 아직은 비관적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