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오딧세이 무릎꿇린 '최강 밴'

캠핑과 아웃도어 열풍은 국내 미니밴시장에도 영향을 끼쳤다. 올 1분기 미니밴급 차량의 판매는 6년만에 최대실적을 기록하며 1만3500대 수준까지 올라섰다. 특히 경차(-11.8%), 소형차(-16.8%), 중형차(-22.2%) 등 대부분의 세그먼트가 두자릿수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미니밴급만 두자릿수 상승세(17.3%)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미니밴 시장은 기아차의 카니발이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카렌스와 한국지엠의 올란도가 힘을 내고 있다. 쌍용차의 코란도 투리스모도 11인승이라는 파격적 구성을 앞세워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각오다.
 
국산 미니밴시장에 카니발이 있다면 수입차 브랜드에는 시에나가 있다. 뉴 캠리와 벤자의 디자인에 영향을 준 차량으로 미국 내에서 연간 11만대 넘게 팔릴 만큼 인기가 높다. 다목적 밴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국내 분위기를 감안, 토요타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는 시에나를 시승해봤다.
 
◆우등버스 같은 넉넉함, 전동제어도 매력
 
시에나를 보면 압도적인 크기에 우선 놀란다. 전장 5085mm, 전폭 1985mm, 전고 1790mm나 된다. 다른 미니밴에 비해 큰 축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단에 익숙한 운전자라면 시에나의 차체에 익숙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다.
 
실내공간은 빼어나다. 말로만 7인승인 대부분의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나 소형 미니밴과 비교하면 뒷좌석에 앉아도 '사람다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2열에 강점이 있다. 2열에 우등 고속버스나 비행기 1등석에 적용되는 오토만 시트가 적용됐다. 종아리 부분에 받침이 올라와 눕다시피한 승차감을 맛볼 수 있다. 슬라이딩 레버를 조정하면 최고 650mm까지 공간이 확보된다. 4인승으로 활용하면 2열 사용자의 활용이 극대화될 수 있는 구조다.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3열의 한계는 있다. 2열의 양보가 없다면 건장한 성인남성이 앉기에는 비좁게 느껴진다. 게다가 1·2열이 2인 탑승구조인 반면 3열은 3인좌석이다. 3열에 3인이 탑승하면 이곳에 앉은 승객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3열은 시트조작을 통해 트렁크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버튼만으로 3열 시트를 트렁크 하단부로 집어넣을 수 있다. 5인 이상이 이동할 때는 3열을 좌석으로, 그 이하일 때는 적재함으로 활용하기 간편하게 만들어졌다. 2열은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2열을 떼어내고 3열을 폴딩하면 엄청난 적재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운전석에서 차량 내 모든 도어와 윈도우를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흔히 선루프 조작버튼이 위치한 오른손 머리 위쪽에는 뒷문과 트렁크를 전자동으로 열고 닫는 버튼이 있다. 뒷문은 슬라이딩 방식으로 직접 레버를 당기기만 해도 자동으로 열고 닫혀진다. 스티어링휠 왼편에는 3열 창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버튼이 있는 점도 이채롭다.
 
혼다 오딧세이 무릎꿇린 '최강 밴'

혼다 오딧세이 무릎꿇린 '최강 밴'

◆세단 수준의 승차감, 주행력도 일품
 
시에나를 주행하면서 감탄한 점은 2톤에 달하는 차체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는 반응력을 뽐낸다는 사실이다. 6기통 3.5ℓ 가솔린 엔진의 힘이겠지만 육중한 체구를 가볍게 만드는 토요타의 기술력은 인정할 만했다.
 
시에나의 주행감은 세단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솔린 엔진 특유의 정숙성과 힘이 느껴졌다. 주행성능도 탁월했다. 가속력이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속도를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이다.
 
높은 차체에서 오는 쏠림도 우려했던 수준에 크게 못미쳤다. 편도 1차선 국도에서 70km/h의 코너링을 시도했는데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동승자들도 안락한 시트 덕분인지 불편함을 호소한 이가 없었다.
 
조작감은 다소 가벼우면서 부드럽다. 소형차를 운전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 정도다. 때문에 노인이나 여성운전자가 조작하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시에나의 공인 연비는 8.5km/ℓ로 3500cc급 가솔린 차량 치곤 나쁜 편은 아니지만 만족할 수준도 아니다. 게다가 실제 연비는 이보다 떨어진 7km/ℓ 내외를 기록해 안락한 주행성능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3.5리미티드 모델의 가격은 4970만원으로 같은 배기량의 혼다 오딧세이보다 180만원 비싸다.

오딧세이가 넘지 못한 시에나의 아성

그간 수입차시장에서 미니밴은 크라이슬러의 독주였다. 2001년 출시된 그랜드보이저는 수입 미니밴의 명맥을 이어온 차다. 월 30대 이상씩 팔리며 시장을 10배 가까이 키웠다. 그러나 그 명성은 2011년 미국산 일본 미니밴 시에나의 등장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시에나는 지난해 641대가 팔리며 시장을 장악했다. 정속성과 주행성능, 무엇보다 그랜드보이저보다 1000만원가량 저렴한 가격이 시에나의 판매를 끌어올렸다. 그 사이 그랜드보이저는 리콜 등의 홍역을 앓으며 연 판매량이 전성기의 한달 수준(41대)으로 내려앉았다.

시에나의 성공은 또 다른 일본 브랜드를 자극시켰다. 혼다는 미국 미니밴시장에서 시에나와 대결하고 있는 오딧세이를 지난해 말 국내에 전격 도입했다. 당초 수입 계획이 없다가 시에나가 시장에 안착하자 방향을 선회했다.
 
혼다코리아는 출시 때부터 시에나를 의식했다. 목표도 '시에나의 판매를 따라잡는 것'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두 차종은 미국시장에서 연간 10만대를 판매하고 있는 라이벌이다. 판매순위도 큰 격차가 나지 않는 선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관계다. 혼다코리아가 국내 시장에서 오딧세이에 거는 기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신차출시 효과에도 불구하고 오딧세이는 시에나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에나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294대가 팔리는 동안 오딧세이는 168대에 그쳤다. 특히 출시 효과가 두드러졌던 12월 50대가 판매된 이후 매달 25대 수준에서 정체된 상태다. 오딧세이 출시에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며 여유를 부리던 토요타의 반응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닌 듯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