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 모든 정부의 공통된 과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부존자원은 부족하지만 높은 교육수준으로 인력이 풍부해 지식산업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편이다. 지식산업의 핵심은 혁신을 '자본화'(monetization)하는 데 있다. 여기서 문제는 혁신을 '어떻게' 자본화하는가, 즉 어떤 혁신이 수익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가다.

기술과 관련된 여러 정책이나 대중이 기대하는 것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류가 몇 가지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발명이나 극단적 혁신이 마켓 우위를 점한다는 것과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이러한 믿음은 현실에서 무참히 깨지고 있다.

IT 분야에는 전설적인 기업이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레이저 프린터 ▲비트맵 이미지 ▲보이는 대로 편집할 수 있는 텍스트 에디터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이더넷(Ethernet) 등 찬란한 IT기술을 선보인 업체인데, 이는 애플도 IBM도 마이크로소프트(MS)도 아닌 제록스(Xerox)다. 애플과 MS는 제록스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마음껏 수확한 '수혜자'일 뿐이다.

제록스가 한 일은 '정보시대를 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플과 MS가 한 일은 대체 무엇일까. 비판을 즐기는 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애플과 MS는 제록스의 기술을 훔치고 베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한 행위가 바로 혁신이다. 혁신과 발명은 어떻게 다른가. 혁신은 고쳐서(革) 새롭게(新)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혁신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쓸모 있게 만드는 행위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조행위인 발명과는 다르다.

물론 이 말이 발명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발명 없는 혁신은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보다 앞선 발명에 가까운 기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발명만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혁신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 마켓이 기술에 반응해온 방식을 애써 무시하려는 것일 뿐이다.

미국의 기술예측 전문가인 폴 새포(Paul Saffo)는 "기술은 변화를 촉발하지 않지만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기술이 필요하다"는 표현으로 기술의 역할을 설명한다. 기술 때문에 세상이 변한다기보다는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대중의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소비자로서의 대중은 새로운 것에 열광하면서도 지나치게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지식재산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발명을 위한 연구개발(R&D)은 게을리 해선 안되겠지만, 사회와 대중의 변화 욕구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혁신적 R&D는 그 파급력을 고려할 때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요구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