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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가 과거 개최한 R&D 모터쇼에서 연구소직원들과 협력사 엔지니어 등이 세계 명차들의 트렌드와 기술 등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
불과 1980년대만 해도 볼록한 배가 부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게으름을 상징하는 지방덩어리가 된 것처럼, 연료만 퍼먹는 고배기량 자동차도 친환경·자원절약시대가 되면서 퇴출을 맞게 된지 오래다.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외부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자동차업계가 좇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는 무엇일까.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미래의 자동차는 '친환경(효율성)', '친인간(지능성)', '연결성'이라는 세가지 트렌트가 압축된 방향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자동차 혁신 R&D의 꽃 '친환경'
이를 위해 업계는 가장 먼저 자동차의 고연비 달성과 공해물질 배출 축소, 최적의 운전경로안내를 통한 운전시간 절약 및 교통체증 해결 등을 통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하는 발전방향을 모색 중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고연비 달성을 위한 연구개발(R&D)의 기본은 엔진 다운사이징과 차량 경량화다.
엔진 다운사이징은 기본적으로 엔진 배기량을 줄이는 동시에 터보차저를 통해 출력을 유지시키는 게 핵심이다. 환경에 유해한 배출가스와 이산화탄소는 줄이는 대신 동력성능과 연비는 오히려 더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국내시장에선 르노삼성자동차가 올 상반기 1.6 터보엔진과 듀얼클러치를 사용한 SM5 TCE를 선보여 출시 한달 만에 1200여대 계약에 성공,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한 바 있다. 국내 중형차시장에서 최초로 선보여진 엔진 다운사이징 모델로서 연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소비자들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는 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한국지엠 역시 올 초 1.4 터보 엔진을 장착한 소형 SUV 트랙스를 출시한 데 이어 최근 크루즈 터보까지 선보이면서 중·소형 차종 중심으로 엔진 다운사이징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차세대 2.0 터보 GDI 엔진을 향후 중형급 차량에 탑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점유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해당기술을 보급할 경우 완성차업체들의 각축이 가장 치열한 중형급 차량 부문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아울러 현대차는 차량 경량화를 연구개발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대표업체이기도 하다. 임종대 현대자동차 재료개발1실장(이사)은 지난 10월29일 열린 '자동차부품산업 발전전략 세미나'에서 "현대차는 최근 들어 차량 경량화를 차량 연구개발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과감하게 투자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임 실장은 이날 고강도화, 경량재료 적용, 구조 최적화 등 현대차의 경량화 추진전략을 소개하고 철강, 강판, 자성재료 등 부품업계에 요구되는 다양한 소재 개발 기술을 설명했다.
국내 1위 철강기술을 보유한 포스코 역시 차량경량화 부문의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최근 자동차회사에 공급하는 신수요 강종에 대한 품질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전기자동차용 철강차체'(PBC-EV)를 선보였다. PBC-EV는 초고강도강 사용량을 일반 차체보다 40% 이상 늘리는 최첨단 공법이 적용됐으며, 기존 차량대비 50%의 온실가스 배출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포스코는 앞으로 PBC-EV 차체를 송도 글로벌 R&D센터에 전시하고, 자동차용 첨단소재 및 가공기술의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차체의 경량화와 안전성은 물론 비용절감 측면까지 감안한 고객사 맞춤형 철강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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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탈 것'을 넘어 '소통'이 돼야
전기전자 및 통신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소비자의 자동차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도 달라졌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관계자는 "과거의 자동차는 이동수단으로서 운동성능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전돼 왔지만, 미래의 자동차는 외부환경을 연결하는 생활공간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0월10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2013 R&D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공개된 기술들은 자동차의 친인간성의 방향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소인증(왜소증) 환자를 위해 특수장갑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글로브',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을 위한 미니 주차로봇 '주차의 제왕', 본체를 접어 좁은 주차공간에도 주차가 가능한 자동차 '엑시스', 운전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자동차 '힐링 크루즈', 자동차 앞유리를 스크린으로 활용해 레이싱게임을 즐기도록 한 '리얼 레이싱' 등이 그것이다.
권문식 현대차 사장은 이날 "자동차가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에서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매우 소중한 기술이 구현됐다고 생각한다"면서 "리얼 레이싱의 경우 앞으로 1~2년 안에 실제 양산형 기술로 구현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10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차를 만든다고?
앞서 언급한 자동차의 고효율과 지능화를 구축하기 위해선 타산업체와의 연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자동차산업은 언뜻 단순 제조업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IT·소재·통신 등 다양한 산업과 맞물려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친환경차(전기·수소차), IT 분야의 R&D가 자동차업체와 타산업체 간 크로스오버 움직임의 중심이다. 벌써부터 업계에선 현대차가 배터리를 만들고 삼성전자가 전기차를 생산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자동차의 전장화 흐름에 맞춰 기존 부품업계의 안방마님인 현대모비스를 비롯해 삼성, SK, LG 등 유수의 대기업들이 전장부품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자동차부품 R&D를 위해 설립한 LG전자 인천캠퍼스 준공식에서 구본준 그룹 부회장이 "전자사업에서의 혁신을 주도한 경험으로 친환경 자동차부품 분야에서도 고객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말한 것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발언이다.
자동차부품 R&D사업에 뛰어든 주요 대기업을 살펴보면 LG의 경우 현재 LG화학이 자동차용 2차전지를, LG이노텍이 지능형 헤드램프시스템 등의 기술을 보유한 가운데 LG전자까지 내세워 자동차 전장부품사업 확대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삼성도 삼성SDI의 중대형 2차전지와 삼성전기의 정밀모터, 삼성토탈의 차량용 경량화 소재 등을 바탕으로 전장부품 연구에 열중이다. SK 역시 SK이노베이션(2차전지 개발)과 SK텔레콤을 통해 자동차 전장화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차세대 자동차 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완성차업체가 다른 전문부품업체 또는 타산업체 간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공동 설계·생산을 추진해 모듈화에 필요한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부품업체들의 수익성도 높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