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지난 11월13일 인쇄업체를 운영하면서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업체 대표 A씨(69)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보험업계가 술렁였다. A씨가 조성한 비자금을 국내 최대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 소속 설계사 B씨와 교보생명 소속 설계사 C씨가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B씨와 C씨는 A씨의 비자금을 비과세 상품에 투자해주는 등 탈세를 도왔고 수백억원의 자금을 관리한 대가로 수년간 '보험왕'에 오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금융감독당국은 보험설계사의 불법영업 행태에 대해 긴급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B씨와 C씨가 활동했던 대구지역의 지점이 대상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험설계사의 불법영업 행태는 뿌리 뽑힐 수 있을까. 생보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물음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리베이트'에 발목 잡힌 보험왕

경찰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인천과 대구지역에서 인쇄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지난 1992년부터 2008년 사이 직원명의의 통장을 이용해 50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조성된 비자금은 보험사의 비과세 상품에 투자했다.

비과세 상품 투자에 연관된 설계사가 바로 B씨와 C씨였다. A씨는 B씨와 C씨에게 각각 200억원의 자금을 관리하도록 했다. 돈관리를 맡은 설계사들은 비과세 저축형 상품에 가입했다가 만기가 되면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를 통해 A씨는 조성된 비자금에 대한 세금을 덜 낼 수 있었으며 B씨와 C씨는 수백억원대의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A씨의 자금을 등에 업고 B씨와 C씨는 유명세를 탔다. B씨는 수년간 '삼성생명 보험왕'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으며 C씨도 2000년대 중반 '교보생명 보험왕'에 등극했다.

문제는 B씨와 C씨가 A씨로부터 보험계약을 따내면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현재 B씨와 C씨가 보험계약을 대가로 A씨의 부인에게 각각 3억5000만원, 2억2000만원을 제공해 보험업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보험업법 제98조는 '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종사하는 자는 그 체결 또는 모집과 관련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에게 특별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하기로 약속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B씨는 "보험가입의 대가가 아닌 세무조사 비용보전을 위해 지급했다"며 "이러한 사실은 경찰에서 충분히 소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생보사 관계자는 "세무조사 비용보전을 왜 설계사가 해주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이것도 리베이트의 일종으로 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고객의 돈을 투자금 명목으로 받아 가로채는 '먹튀 설계사'도 보험업계의 오랜 골칫거리다.

지난 8월, ING생명 소속 설계사 D씨는 평소 자신이 관리하던 고객 15명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12억6700만원을 편취했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D씨는 ING생명에서 총 11회에 걸쳐 '우수 보험설계사'로 선정됐으며 설계사 위촉계약 전에 사기 등의 전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당국은 내부통제시스템 들춰본다지만…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설계사의 리베이트 사고가 발생하자 금융감독원은 해당 보험사에 대한 전면적인 검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일단은 문제가 발생한 보험사의 대구지역 지점에 대해 조사를 벌인 뒤, 확대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리베이트 등 모집질서 위반 및 불법행위에 대해 보험사가 내부통제시스템을 잘 갖췄는지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그러나 생보업계는 이 같은 금감원의 계획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생보사들은 현재 리베이트를 사전에 단속하기 위한 기술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보험계약이 체결되고 그 대가로 받는 수수료 중 일부가 고객에게 넘어가는 것을 기술적으로 사전에 방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또 계좌흐름 등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거래로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설계사가 많은데 이를 잡아내기는 매우 어렵다고 토로한다.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큰 계약이 체결되면 정황상 리베이트 제공 등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이를 기술적으로 차단하거나 잡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고객의 돈을 개인적으로 받아 도망가는 '먹튀 설계사'에 대한 대비책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설계사와 맺는 위촉계약서에 이와 관련한 사안을 명시한 보험사는 전무하며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방법 외에는 특별한 대비책이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생보사 관계자는 "리베이트와 먹튀 설계사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베이트 못받으면 바보?

실제 보험영업 전선에서 뛰고 있는 설계사들은 '리베이트'와 관련해 또 다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대놓고 리베이트를 원하는 고객이 늘고 있어서다. 특히 다른 설계사와 규모를 비교하며 노골적으로 현금이나 사은품, 접대 등을 요구하는 고객이 증가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리베이트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 영업에 몸담은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자녀보험에 가입해주고 고급 유모차를 받아가는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영업 관계자는 "주는 설계사도 잘못이지만 노골적으로 바라는 고객도 문제"라며 "리베이트를 못받으면 '스마트 컨슈머'가 아니라는 소비자의 잘못된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먹튀 설계사'에게 당하지 않는 법
 
보험설계사에게 개인적으로 돈을 맡겨 투자하는 경우 원금손실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보험사는 고객의 피해를 보상할 의무가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가 말하는 '먹튀 설계사' 방지방법을 소개한다.
 
◎보험료는 자동이체로 납부한다.
보험료를 자동이체로 납부하면 '먹튀'를 당하지 않고 보험료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다.

◎보험료 납입내역서는 확인 필수.
어쩔 수 없이 설계사를 통해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는 고객이라면 매월 보험사가 제공하는 보험료 납입내역서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이 내역서를 통해 납입여부와 보험료 담보대출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보안카드를 절대 넘기지 않는다.
간혹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보험사의 보안카드를 설계사에 넘기는 고객이 있다. 이는 납입한 보험료를 전부 설계사에게 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떠한 경우에도 보안카드는 설계사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