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손해보험을 매각해 기업어음(CP) 투자자들의 피해를 보상하겠다."

 

지난 11월19일, LIG손해보험은 이 같은 내용을 공시했다. 이어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LIG건설 CP투자자'에 대한 피해보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가가 보유한 LIG손보 주식 전량을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손보사 '빅4' 중 하나로 자산 18조원을 가진 회사의 오너가 경영위기가 아닌 보상금 마련 차원에서 회사를 팔겠다고 발표해서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LIG그룹과 LIG손해보험 등 오너 일가와 몇몇 고위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기 때문에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발표 당일 LIG손보의 주가는 급등했다.

이제 손보업계의 관심은 LIG손보의 새 주인이 누구일 것인가에 쏠려 있다. LIG손보의 임자가 누가 되든 업계 2위권으로 등극할 수 있어서다.

 

오너 손 뗀 LIG손보…경쟁사가 인수 나설까

▲사진=구자원 LIG그룹 회장


◆20%만 먹자…알짜매물, 왜?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번 LIG손보 매각 발표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랜 기간 업계 4위를 고수해온 LIG손보가 매물로 나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LIG손보는 올 회계연도 2분기(7~9월)에 45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4.2% 감소했지만 7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91.2%였던 것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어려운 경영환경에서도 이익을 창출하는 알짜회사인 것이다.

비교적 싼 가격에 국내 4위 손보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관계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구 회장이 내놓은 LIG손보의 주식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보유주식인 1257만4500주(20.96%)다. 매각 발표가 나온 지난 11월19일 종가 기준 LIG손보의 주당 가격은 3만450원이다. 일가의 지분을 모두 팔면 3800억원이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얻어 약 4000억원의 가격이 책정된다.

손보사의 한 관계자는 "구 회장 일가의 지분인 20%만 매입하면 업계 4위, 자산 18조원의 손보사를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이라며 "지분구도에서도 비우호세력이 없어 경영권 방어도 쉽다"고 말했다. 실제 구 회장 일가를 제외한 LIG손보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으로 9.47%(568만1514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권이 LIG손보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20%대의 지분 매입으로 LIG투자증권까지 품에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LIG투자증권은 LIG손보의 자회사로 현재 82.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구 회장 일가의 지분을 매입하면 LIG투자증권까지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인수 시 단번에 업계 2위로

LIG손보가 갑작스럽게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경쟁 손보사들이다. 현재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곳은 한화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이다. 후보군들은 일단 '관심이 없다'고 밝혔지만 LIG손해보험을 가지면 단숨에 업계 2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월말 현재 국내 손보업계의 점유율은 삼성화재(26.3%), 현대해상(16.1%), 동부화재(15.3%), LIG손보(13.7%), 메리츠화재(7.4) 순이다. 만약 한화손보(6.3%)나 농협손보(3.2%), 롯데손보(3.0%)가 LIG손보를 인수하면 업계 2위로 뛰어오른다.

다만 관련업계에서는 한화손보의 경우 내부사정상 인수전에 뛰어들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한화손보는 금융감독당국의 지급여력(RBC)비율 가이드라인을 맞추지 못해 1600억원대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또한 지난 11월부터 인력감축을 위한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한화손보는 자금사정 등으로 인수전에 뛰어들기 힘들 것"이라며 "그룹의 지원을 받는다면 롯데손보가 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농협손보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농협손보는 자동차보험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방카슈랑스 '25% 룰'을 유예 받는 조건으로 자동차보험을 판매하지 않기로 해서다.

이와 같은 내용은 농협업법에도 명시돼 있는 데다 경쟁 손보사들의 큰 반발이 예상돼 언제 이 규제가 풀릴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만약 농협손보가 LIG손보를 인수한다면 LIG가 갖고 있는 자동차보험 판매 '자격증'을 이용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또 다른 손보업계 관계자는 "농협금융이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 주력하는 상황이어서 자금동원력을 봐야겠지만 농협손보와 LIG손보의 결합은 충분히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KB금융, 신한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도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의 경우 계열사 중 생명보험은 있지만 손해보험은 없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비은행권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손보업 진출을 희망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변수가 있다. 바로 우리금융 민영화다. 현재 KB금융은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각에 참여한 상황이며 신한금융은 광주은행 인수전에 뛰어든 상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 민영화에 참여한 KB, 신한, 농협금융 중 실패한 쪽이 LIG손보 인수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구자원 회장의 결단… 현재현, 보고 있나


오너 손 뗀 LIG손보…경쟁사가 인수 나설까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사진=뉴스1 오대일 기자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기업어음(CP) 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해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LIG손해보험의 지분과 경영권을 포기하자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바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다.

현재현 회장 역시 구자원 회장과 마찬가지로 기업어음(CP) 발행 및 판매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동양증권 노조는 현재현 회장과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을 사기 및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양 사옥과 동양증권 등 동양그룹 계열사를 비롯 현재현 회장, 정진석 사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른바 '동양 사태'는 CP발행과 법정관리 신청, 그리고 검찰 수사로 이어진 점이 여러모로 LIG그룹 사건과 닮았다.

현재 정치권과 여론은 현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서민들의 투자금을 보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현 회장은 "전 재산을 회사에 넣고 경영하다 이렇게 된 상태이기 때문에 (개인재산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고 답변했다. 개인재산이 없다는 이야기로 사재출연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1월19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LIG그룹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겨 향후 현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