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선임 상담원은 20여년 전 도박을 처음 접한 것을 계기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직장과 가정을 잃고, 한때 정신병원에도 입원했었던 그는 "도박 상담을 하면서 매일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엘리트 공무원이었던 그가 도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0년대 중반 우연히 호텔에서 슬롯머신을 접하면서였다. "게임을 한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잭팟이 터졌어요. 70만원이라는 거금을 쥐게 됐죠." 당시 월급이 20만원이었으니 석달치가 넘는 돈을 딴 것. 친구들과 2차, 3차를 돌며 즐긴 그날의 행운은 결국 치명적 독(毒)이 됐다.
이후 혼자서도 도박장을 출입하면서 그동안 저축해둔 돈을 탕진하고 게임 밑천을 위해 대출받은 돈까지 날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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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선 안 되겠다'는 마음에 결심한 것이 해외생활. 그러나 도박 바이러스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미국에 간 그는 카지노 도시인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을 즐겼고, 귀국 후에는 과천 정부청사에서 일하며 경마에 빠져들었다.
"은행 담당 공무원이라 은행에서 담보 없이도 돈을 빌려줬어요. 그것도 다 날리고 이후에는 동료들을 보증 세웠다가 동료 공무원 18명의 월급이 압류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20여년 몸 담았던 공직생활이 끝났다. 이후 '낙하산'으로 공기업에 들어가지만 이번에는 입찰보증금을 들고 도박장에 갔다. 공금 횡령에까지 이른 것이다. "직장에서 파면됐죠. 다행히 동료들이 돈을 보충해줘 교도소는 가지 않았어요."
2000년 아내와 이혼하고, 꽃동네 정신요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지냈다. 그저 밥을 얻어먹고 남들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숨어살던 그에게 새 인생을 살 기회가 온 것은 2001년. 강원랜드에서 도박중독 상담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난 것이다.
"당시에는 상담하는 방법도 몰랐지만, 나 같은 사람 더 안 생기게 하겠다고 다짐했죠." 결국 그가 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됐다. 그는 이후 지금까지 12년째 상담사로 활동하면서 '재생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만일 도박 상담을 하지 않았다면 또 도박장으로 달려갔을 겁니다. 그만큼 도박은 치유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입니다."
이미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에게는 극복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흔히 도박 치료과정을 당뇨병 치료에 비유하기도 한다. 단기간 완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되지 않도록 평생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
도박 중독과 싸우는 이들을 돕는 방법도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최근 도박중독상담센터를 찾은 이들과 자신의 얘기를 담은 <삶을 베팅하는 사람들>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도박 중독자들이 넘어지려 할 때 손을 잡아주고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이러한 도박중독자들에게 새 삶에 대한 용기를 주고자 24시간 무료 상담전화인 헬프라인(080-300-8275)를 운영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