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재계의 봄은 따뜻하지만 조용하다. KT로 시작된 기업의 구조조정 바람이 재계 전역으로 퍼지는 와중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겹치면서 여느 해보다 침착하고 차분한 게 요즘 분위기다.

◆구조조정 '속도'… 뭉치거나 줄이거나

우선 훈풍이 불어야 할 시기에 구조조정 바람이 거센 것은 다소 의외의 모습이다.

지난 4월8일 KT가 2만여명 대상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계열사 사업개편을 단행한 삼성그룹 역시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포스코, 한화 등도 이 같은 구조조정 행렬에 동참했다.

KT는 구조조정 발표이후 4월21일 현재 특별 명예퇴직 접수에 예상보다 많은 8300여명이 신청했다. 지난 2003년부터 진행한 명예퇴직 가운데 최대 규모인 셈. KT의 이번 인력 조정은 계열사 정리 등 시스템 정비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KT 서초사옥 /사진=머니투데이DB
KT 서초사옥 /사진=머니투데이DB
삼성의 구조조정 소식은 재계를 더욱 웅크리게 한다. 올 들어 삼성은 계열사간 합병과 사업 구조조정 등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키로 했고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도 합병을 의결했다. 생명보험업계 1위 삼성생명이 1000명 안팎을 줄이기로 한 것을 기점으로 삼성증권 등 다른 금융 계열사들도 이례적인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중공업도 조만간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조직통폐합에 들어갈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월 건설사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을 합병하며 사업구조 재편에 시동을 걸었고 포스코도 다음달 16일 열리는 이사회를 기점으로 구조개편 작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재계 20~30위권 기업들의 존폐를 건 구조조정 행보도 눈에 띈다. 동부그룹과 현대그룹은 은행권 채권단의 관리를 받아 고강도 자구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애도… 행사 취소 혹은 자숙

뜻하지 않은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에 기업들이 ‘자숙 모드’에 돌입한 점도 올 봄 재계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지난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계속 늘어나자 기업들은 예정돼 있던 제품 출시 행사나 이벤트, 광고집행 등을 전면 취소하며 국가적인 애도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삼성은 사고 발생 당일부터 모든 계열사 임직원에게 골프와 무리한 음주, 외부 행사를 자제하도록 했다. 4월25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릴 예정이던 대학생 토크콘서트 ‘열정락(樂)서’ 일정도 무기한 연기했다. 같은 달 18~20일 기획했던 삼성에버랜드의 벚꽃축제도 취소했다.

LG전자 역시 자사가 후원하는 손연재의 리듬체조 갈라쇼 'LG휘센 리드믹 올스타즈 2014'를 하반기로 순연했고, 롯데주류와 금호타이어도 각각 예정된 맥주 ‘클라우드’ 출시 기자간담회와 신제품 출시회를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했다. 포스코는 4월19일 개최하려던 포스코센터 음악회를 취소했고 E1 역시 같은 달 18일로 예정된 창립 30주년 기념식 및 비전선포식을 뒤로 미뤘다.

직접적으로 세월호 구조작업에 발 벗고 나선 기업들도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전남 진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인양을 위해 천안함 인양에 투입된 3600t급 해상크레인을 현지로 급파했다. 삼성중공업의 3600t급 '삼성 2호'와 대우조선해양의 같은 규모 해상 크레인인 '옥포 3600호'는 현재 세월호 인양 작업에 투입됐다.

이밖에 오뚜기와 농심은 컵라면과 생수를, 대한항공은 생수와 담요 등의 긴급 구호품을 지원했으며 신세계그룹도 1톤 트럭 4대분의 생활용품과 담요, 밥차 1대를 보내 구조 활동에 힘을 보탰다.


세월호 침몰 현장 /사진=뉴스1 DB
세월호 침몰 현장 /사진=뉴스1 DB
◆등기임원 보수공개 후폭풍에도 '움찔'

올해 처음 공개된 등기임원의 개인별 보수 공개(연봉 5억원 이상) 역시 재계의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역할을 했다.

연봉 공개 결과 지난해 5억원 이상 연봉을 받은 상장기업 임원은 모두 640명으로 전체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 임원의 7.5%나 됐다.

문제는 등기임원의 보수 공개에 따른 후폭풍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재벌총수들은 실제로는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미등기임원이라는 이유로 빠지는가 하면, 법 시행을 앞두고 등기이사에서 물러나 ‘고의 누락’시키는 경우도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특히 고액 연봉을 주는 기업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지고 있고, 기업 간에도 적은 보수를 받는 기업의 임직원들이 상대 기업의 임금 수준을 보고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생기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현재 연봉 공개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속속 나오고 있다. 등기임원뿐 아니라 비등기임원도 공개하도록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그해 적자가 난 회사의 등기임원에 대해서만 실적부진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에선 이번에 빠진 재벌총수들을 향후 연봉공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등기임원에서 미등기임원으로 갈아타는 재벌일가 고위 임원의 편법행위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기업 임원에 대한 연봉상한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연봉 산정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 미국은 등기와 미등기 여부를 가리지 않고 최고경영자(CEO)와 재무책임자(CFO), 그리고 임원들 중 급여를 많이 받는 상위 3명 등 총 5명의 연봉을 공개한다. 일본은 1억 엔(약 10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임원은 누구나 액수를 공개해야 하며, 독일도 이사회 멤버면 연봉을 모두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