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베끼기 황제'의 처세술
지난 6월12일 모 중소외식업체 사장으로부터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수개월에 걸쳐 공들여 개발한 자사 상품이 버젓이 대기업 유통망에 나돌고 있어 피해가 막심하다는 사연이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메일에 언급된 롯데마트로 향했다.
실제로 롯데마트는 브라질 월드컵을 하루 앞둔 지난 6월12일부터 중소외식업체의 '오짱'을 몰래 가져다 '오징어통마리튀김'으로 상품명을 바꿔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은 3800원으로 6000원 초반인 원조 오짱보다 2200원가량 저렴했다. 오징어 한마리를 통째로 튀긴 이색 콘셉트에 판매 매장은 오징어통마리튀김을 구매하려는 고객들로 가득했다. 롯데마트의 '도둑질'을 다루는 기사 내용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며칠 뒤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던 업체 사장은 취재 중지를 요청했다. 롯데마트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자고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인 만큼 '상품카피 사건'은 일단락됐다는 게 이유였다.


중소기업 사장이 '언론플레이'를 한 것 같아 언짢았다. 중소외식업체는 원하는 것을 얻었고 대기업의 상품카피 사건에 대한 기사 주제는 오묘하게 흐트러졌다. 중소기업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중소기업으로서 대기업과의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는 이점을 거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테니…. 문제는 일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이런 아킬레스건을 역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롯데마트의 처세술이 그랬다. 롯데마트는 도둑질해온 카피상품으로 수익을 꾀하려 했다. 하지만 세간의 질타를 예상하고 해당 중소외식업체와 합의했다. 구체적인 합의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소외식업체 측으로부터 "(대기업과) 앞으로 사업과 관련된 도움을 주고받고 유지하기로 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렇게 롯데마트의 상품카피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롯데마트의 이 같은 행위를 더 이상 문제 삼아선 안되는 걸까. 또 이로 인해 부각될 도덕적 문제까지 깔끔하게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롯데마트는 그동안 '오리온 포카칩'과 '롯데 통큰 감자칩',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 통큰 초코파이', 'CJ제일제당 햇반'과 '롯데 햇쌀한공기 즉석밥' 등 미투상품 출시로 업계에서 '카피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이번에는 상대의 덩치가 작았다. 상품카피 사건이 대기업과 대기업 사이에서 벌어졌다면 이번 상대는 오랜 연구개발 끝에 겨우 시장에 상품을 내놓은 중소외식업체였다.

어쨌든 사건은 양 측의 합의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사건 종결 여부를 떠나 힘든 연구개발과 시장확보를 위한 중소기업의 노력을 무시하고 손쉬운 베끼기로 자신의 잇속만 채우며 상도를 저버린 롯데마트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대기업 차원의 횡포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롯데마트가 약속한 동반성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