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경제를 살펴봤을 때 약달러·엔고 시기에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달러강세와 엔화약세가 이어지는 시기에는 맥을 못 췄다. 이를 증명하듯 국내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은 환율불안의 영향으로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비슷하거나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세계적으로 달러를 제외한 모든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자국통화 경쟁력 제고가 환율시장의 최대과제로 떠올랐다. 달러강세 속에 자국 통화가치를 다른 국가 통화보다 낮춰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된 셈.
이 가운데 한국은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에 비해 통화가치 절하 폭이 작은 것으로 드러나 수출시장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여기에 조선·휴대전화 등의 수출시장 주요 경쟁국인 중국의 위안화가치 절하가 더해져 한국경제를 사면초가로 내모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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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DB |
◆ 달러강세 불가피, 한국 수출업계 가격경쟁력 약화
당분간 달러화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중 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3분기 말 현재 원/달러 환율은 1055.2원으로 2분기 말(1011.8원)보다 4.1% 상승했다. 이 상승폭은 지난 2011년 3분기 중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가 9.4% 절하된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수치다.
한은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달러화강세가 원화가치 하락의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달러화의 가치는 연일 롤러코스터를 탄 듯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달러화가 강세를 띨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 한다.
올 하반기 미국 경기지표가 회복세를 보이는 데다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풀었던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해져 달러화강세에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 여기에 내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강달러 현상을 견인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운용사들도 달러화 강세의 지속을 점친다. 핌코 플래그십 펀드의 대표 매니저 3명 가운데 한명인 스캇 마더 매니저는 "핌코는 미국 달러화가 유로와 엔화에 대해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신(新) 채권왕'으로 불리는 더블라인캐피탈 창업주인 제프리 군드라크 최고경영자(CEO) 역시 "독일과 스페인의 주요 투자자들이 자국 국채가 아닌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달러자산 투자확대가 달러화강세로 연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달러강세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 한국 수출시장은 '비상'이 걸렸다.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 통화는 일제히 약세로 돌아선 반면 원화는 상대적으로 절하 폭이 작았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 중 원화가치는 4.1% 떨어져 G20 통화 평균 절하율(5.6%)보다 하락 폭이 적었다.
미국 대 자국통화의 절상·절하율을 나라별로 살펴보면 ▲러시아 루블화 -14.2% ▲브라질 헤알화 -9.5% ▲유럽 유로화 -7.7% ▲일본 엔화 -7.4% ▲호주 달러화 -7.3% ▲터키 리라화 -7.0% ▲남아공 란드화 -5.7% ▲영국 파운드화 -5.2% ▲캐나다 달러화 -4.7% ▲한국 원화 -4.1% 등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의 자국 통화가치는 큰 폭으로 떨어진 반면 원화절하 폭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날 경우 수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약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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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저 당분간 지속, 수출품 가격경쟁 '직격탄'
이번 달러화강세는 엔화약세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추가 양적완화정책을 고민할 정도로 엔저와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일본 통화당국의 의지를 고려했을 때 당분간 '엔화의 약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에는 원/엔 환율이 960원대까지 추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일각에선 내년에 100엔당 원/엔 환율이 800원대 중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00엔당 원/엔 환율이 내년 중 800원대로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간 엔저 현상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엔저가 유지되는 기간 동안 일본기업은 수익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수출품 가격을 크게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업체들이 엔저를 등에 업고 제품 수출가격을 인하하는 시점이다. 일본기업이 수출단가 인하에 나설 경우 한국기업과의 수출품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내년부터 일본기업들이 엔저 장기화를 확신하며 수출품의 가격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한국기업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위안화 약세흐름… 국내 수출기업 '한숨'
엔저현상에 이어 지난 2005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위상을 떨치던 위안화까지 약세흐름을 보이며 국내 수출기업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이 5일 발간한 '중국 위안화 환율상승 원인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3일 위안/달러 환율이 6.1710위안까지 오르면서 위안화가치가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연초보다 1.22% 절하된 수치다.
보고서는 "6월 이후 위안/달러 환율은 중국경제의 불확실성 탓에 박스권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안화약세 원인으로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중국 경기둔화 등을 꼽았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올 연말 위안/달러 환율이 6.13위안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위안화 절하현상이 계속되면 시장에서 중국과 경합하는 한국 수출업체들은 가격 면에서 메리트를 잃고 매출에 직격타를 입는다. 또한 자동차와 철강, 전자, 석유화학 등의 대중 수출이 감소하고 대중국 수출기업들의 채산성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봉걸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위안화 환율 모니터링시스템을 가동하고 대기업보다 환율변동성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