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모씨(28)는 지난 10월 남자친구로부터 금연 약속을 받아냈다. 단 전자담배는 피워도 괜찮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며칠 뒤 윤씨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당혹스러운 얘기를 들었다. 전자담배가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남자친구의 말이 거짓인 걸 알게 된 것. 이후 윤씨는 전자담배도 피우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 대신 액상 니코틴을 조금씩 줄이라고 '조건'을 달았다.
전자담배 인기가 대단하다. 과거에 전자담배가 금연 보조수단으로 이용됐다면 요즘은 또 다른 담배로 인식되는 경향이 짙다. 더구나 지난 9월 정부가 담뱃값 인상 계획을 내놓으면서 전자담배를 찾는 흡연자 수도 크게 늘었다. 물량이 부족해 주문하고 며칠씩 기다릴 만큼 전자담배의 열풍이 거세다.
◆담뱃값 인상이 가져온 전자담배 ‘열풍’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지난 9월 전자담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161% 늘었다. 11번가도 전자담배 기기장치류·금연보조용품 매출 증가율이 873%나 됐다.
전자담배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전자담배의 판매량 증가는 담뱃값 인상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11일 정부가 내년부터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뒤부터다.
전자담배는 중저가형(5만~10만원)부터 고급형까지 다양하다. 충전만 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비용부담이 적다. 여기에 전자담배에 들어가는 액상은 시중에서 20㎖(담배 10갑 상당) 단위로 판매되고 있으며 2만~3만원 수준이다. 당장은 궐련담배와 큰 가격차를 보이지 않지만 담뱃값이 2000원 올라 4500원이 될 경우 가격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전자담배 액상의 가격을 더 낮출 수도 있다. ‘전자담배 김장’이 애연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서다. 전자담배 김장족은 전자담배에 들어가는 니코틴 액상을 해외직구로 구입하고 향료를 적절한 비율로 직접 섞어 김장 담그듯 숙성시켜 만든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기존 액상 가격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급기야 최근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등에서는 전자담배 액상 제조 방법 등이 소개되고 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전자담배 김장 레시피’, ‘전자담배 액상 제조법’ 등의 단어를 입력해 각종 블로그와 카페에 들어가면 전자담배 액상 제조법과 후기 등의 게시글을 접할 수 있다. 온라인 판매가 금지돼 있는 니코틴 액상을 해외직구 및 구매대행업체 등을 이용해 구입할 수 있는 방법도 올라와 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전자담배 판매점 대표는 “예전에 전자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복지부의 발표가 있고 난 뒤 판매량이 크게 떨어져서 사업을 접을까도 생각했다”며 “하지만 두달쯤 전부터 다시 전자담배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확히 말해 담뱃값을 올릴 계획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고 난 뒤부터 전자담배 판매량이 증가했다”며 “아무래도 흡연자들은 담뱃값 인상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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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
◆전자담배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담배업체
담뱃값 인상 소식에 궐련담배 제조업체들의 매출도 한동안 크게 올랐다. 담뱃값 인상안 발표에 따라 일시적으로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면서 담배 판매가 급증하고 매출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9월 편의점업계의 담배 등 기타 상품 판매량은 전년 동기대비 12.1% 증가했다. 담배 제조업체인 KT&G의 지난 3분기 국내 담배판매량도 전 분기 대비 13억개비(9.35%), 전년 동기대비 7억개비(약 4.82%)가량 늘었다. 일부 흡연자 사이에서 10월 전까지 20여일간 사재기가 폭발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지난 9월 정부가 담뱃값 인상 계획을 발표한 뒤 사재기를 막기 위해 ‘매점매석 행위에 대한 고시’를 담뱃값이 오르는 내년 1월1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면서 4분기 매출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고시를 위반하면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서울 광화문의 한 편의점주는 “정부가 담뱃값 인상 계획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담배를 보루씩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요즘은 정부의 사재기 규제 때문에 눈치를 보느라 보루씩 사가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전자담배 열풍이 거세지자 궐련담배 제조업체들도 전자담배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말보로로 유명한 필립모리스는 올해 안에 전자담배를 출시할 예정이다. 유해성 논란에도 전자담배의 인기가 수그러지지 않자 전자담배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팬토바코인터내셔널(JTI)과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BAT)는 이미 전자담배를 출시했다. 메비우스를 제조하는 JTI는 이미 지난해 말 캡슐담배인 ‘플룸’을 국내에서 출시했다. 다만 니코틴 액상을 가열하는 방식이 아닌 실제 담뱃잎을 가열해 증기를 발생시켜 담배의 진한 맛을 구현했다. 던힐로 알려진 BAT도 올해 처음으로 전자담배 ‘바이프’를 출시했다. BAT는 앞으로 매년 약 2700억원을 해롭지 않은 담배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은 전자담배시장에 진출했고 앞으로도 영역을 넓혀나갈 방침이다. 다만 KT&G는 현재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KT&G 관계자는 “전자담배를 개발하고 출시하는 사업계획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않다”며 “앞으로도 궐련담배 제조에만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담배 열풍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내년 담뱃값 인상이 현실화되면 국내 궐련담배시장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고기를 못 먹으니 두부라도 먹는 심정으로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유해성 논란까지 일고 있지만 전자담배의 인기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내년 국내 담배시장의 대규모 지각변동이 점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