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기간, 사람들로 북적이던 서울 주요 도심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서울이 아니었다. 한국인이 빠져나간 자리를 중국인이 가득 메웠을 뿐만 아니라 각 백화점과 쇼핑몰에서는 중국인을 위한 행사가 한창이었다. 평소에도 중국인이 더 많은 면세점이나 명동 한복판은 물론이고 강남 중심에 위치한 백화점에서도 빨간색 무대를 설치하고 빨간 치파오(중국 전통의상)를 입은 미녀들과 판다 코스프레의 인형들이 중국 무술공연을 펼쳤다.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한눈에 보여주듯 중국증시는 춘절 전 일주일간 굳건히 상승하며 지난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춘절 소비에 대한 기대감으로 증시가 올랐고 주식시장 상승으로 연휴 소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기분 좋은 연결고리를 이어나갔다. 소위 소비의 선순환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관료나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지만 중국에서는 현실이다.


 

설 연휴에 북적이는 명동거리. /사진=머니투데이 DB
설 연휴에 북적이는 명동거리. /사진=머니투데이 DB

26억명이 움직인 춘절 연휴

실제로 이번 춘절에 중국인이 보여준 각종 기록은 상상 이상이다. 정부의 공식 춘절 공휴일 기간은 24일까지 일주일이지만 대륙이 큰 관계로 대개 2주가량 쉬는 것이 관례다. 운송당국에서는 춘절 전후 4주까지를 춘절 이동기간으로 보는데 이번 춘절기간 동안 26억명이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10억명), 유럽(6억명), 미국(3억명) 등의 인구를 대략 더한 것보다도 큰 규모다.

중국 최대 온라인여행업체 씨트립은 올해 처음으로 중국의 해외여행객이 국내여행객 수를 넘길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번 춘절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관광객은 무려 1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약 6만명이 제주를 찾아 제주도는 춘절 특수를 톡톡히 봤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관광객들은 손이 큰 걸로도 유명하다. 이들은 한국에서 고가 보석과 명품, 시계 등을 통 크게 구입하는 등 지갑을 시원스레 열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 춘절보다 약 30∼110% 증가했다. 롯데백화점 일부 지점에서는 구매금액이 가장 큰 고객에게 20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왕관을 주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20대 중국 여성이 하루에 3억원이 넘는 돈을 써 유력한 왕관의 주인공으로 점쳐졌다.

중상위 계층도 춘절에 한국을 찾을 정도의 소비 여력을 갖추면서 중국인관광객의 평균 객단가가 낮아졌다. 중국인 1명이 쓴 돈을 연도별로 비교하면 2012년 100만원에서 2013년 90만원, 65만원으로 줄었고 올해 역시 50만~60만원선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앞으로 중국인의 소비패턴이 어떻게 바뀔지 올해 춘절기간 중국의 소비트렌드를 살펴보면서 전망해보자. 춘절은 지나갔지만 오는 5월 노동절 시즌과 9월 중추절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이때를 위해서라도 중국인의 소비트렌드 두가지를 소개한다.

① 온라인시장 폭발적 성장

중국 온라인 상거래시장이 폭발적이다. 우리가 중국보다 많은 분야에서 앞서 있지만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한 ‘핀테크’(fintech) 분야만큼은 중국에 뒤처진다. 이미 중국에는 세뱃돈도 핀테크로 해결하는 추세가 자리 잡았을 정도다.

중국판 세뱃돈인 ‘홍바오’가 온라인서비스로 진화해 텐센트의 모바일메신저 위챗,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등에서 인기를 끌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우리나라도 머지않았다고 본다. 세뱃돈은 물론 각종 돈거래, 심지어는 불법적인 돈거래도 핀테크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SNS 기반을 갖춘 핀테크 관련 주식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 하다. 하물며 인터넷 상거래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인이 많이 찾는 명동, 동대문, 남대문 등의 점포 임대료는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 따라서 온라인 역(逆)직구족을 노릴 필요가 있다. 알리바바에서 창업해도 좋고 알리바바에서 사업성과를 올리는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도 방법이다.

② 문화콘텐츠 소비 본격화

중국인의 문화콘텐츠 소비가 본격화되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는 춘절기간 자동차, 오토바이, 가구 등의 내구재 소비가 돋보였다. 우리도 한때는 고향에 갈 때 새 차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중국도 변했다. 이젠 IT나 고급 액세서리, 문화콘텐츠와 같이 유행과 직결된 품목이 단연 눈에 띈다. 바야흐로 문화소비가 대세인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인도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춘절기간 영화관객이 3배 늘었는데 올해도 2배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투자의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중국 영화시장에 한국영화계의 진출이 늘고 있다. ‘한중 영화공동제작 협정’이 체결되면서 중국과의 합작영화에 관심이 높아졌다. 올해 CJ E&M이 중국과 합작해서 개봉한 중국판 <수상한 그녀>는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는 물론 드라마제작사 입장에서도 중국의 문화소비가 커진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나는 가수다 시즌3>가 한국에서 첫 전파를 탄 지난 1월30일, 같은 시각 중국에서도 <나는 가수다 중국판>이 방송됐다. 필자는 이때 중국 칭다오로 여행 중이었는데 휴대폰으로는 한국판 나가수를, 중국 TV로는 중국판 나가수를 동시에 시청했다. 오히려 한국판보다 중국판이 스케일도 크고 가수들의 퍼포먼스도 화려해 눈이 갔을 정도였다.

중국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다소 조잡한 프로그램 속에서 유난히 완성도가 높은 프로그램이 눈에 띄는데 대부분이 한국이나 외국에서 포맷을 수입한 것들이다. 특히 한중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서 한국 방송프로그램 포맷의 지적재산권을 50년 동안 인정받게 된 것은 고무적이다.

이제는 고작 5000만명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14억 중국인을 상대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국 오리지널판의 수출은 물론 중국과 합작품을 만들 수도 있으니 제작비용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훨씬 여유로워질 것이다. 앞으로도 CJ E&M을 비롯한 각종 방송·영화제작 관련 주식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