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
고가도로. 지표면상 도로와의 평면교차를 피하기 위해 지면보다 높게 지대를 가설하고 그 위에 설치한 도로이다. 한정된 도로의 교통효용을 높이기 위해 건설하는 고가도로는 개발도상국에겐 산업화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역 고가도로는 한국 근대 산업화의 상징물이었다. 1969년 3월 19일 착공하여 1970년 8월 15일에 개통된 이 도로는 한국 최초의 고가도로나 다름없었다. 서울역 고가 도로는 또 하나의 근대화 상징인 청계 고가도로보다 6년 앞서 개통됐다.
때문에 준공 행사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가 테이프 컷팅식에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 관심은 대단했다. 착공과 개통을 했던 당시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인 때였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퇴계로와 만리재로, 청파로(청파동→퇴계로, 퇴계로→중림동)를 바로 연결하는 도로 역할을 했다. 남대문 시장과 청파동, 만리동의 봉제공장 상인들은 이 도로를 통해 물건을 싣고 날랐다. 서울시는 고가가 폐쇄되기 전까지 하루 평균 4만6000대의 차량이 서울역 고가도로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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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 /자료사진=서울시 제공 |
◆서울역 7017 프로젝트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서울역 고가는 노후화됐다.
서울시는 2000년에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서울역 고가도로에 대해 바닥판인 슬래브가 시급히 보수가 필요한 D등급 판정을 내렸다. 이듬해 서울시는 13톤 이상의 차량 통행을 제한했다. 비슷한 시기인 1997년 청계고가도는 이미 승용차 이외의 차량을 제한한 터였다.
서울시는 2006년과 2012년 서울역 고가도로 정밀안전진단에서 잇달아 'D등급' 판정을 내렸다. 2012년 당시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 바닥판을 검토한 결과 잔존 수명은 2~3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4년, 시는 서울역 고가도로 조기철거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가 발표된 건 올해 1월이다. 이는 ‘1970년에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가 2017년 17개의 사람이 다니는 길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에서 명명된 서울역 고가의 공원화 사업명이다. 시는 지난해 고가차도 활용방안 및 시민참여 타당성 검토를 거친 뒤 지난 5월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서울역 고가도로의 통제는 비단 안전성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시는 기존 서울역 역세권이 주변 관광명소 간 연결 보행로를 단절시킴으로써 ‘문화의 단절’을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지하도로의 경우 방향에 대한 인지가 곤란하고, 지상은 3번의 신호대기와 6번의 횡단이 필요해 통행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통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울역 서측지역의 재생을 유도하고, 철도시설로 인한 서울역 동서지역 간 공간적 단절을 극복, 지속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남대문 시장의 상권 활력 회복을 기본방향으로 세웠다. 서울시는 이로써 보행인구가 증가하고 주변상권이 재도약하며 새로운 녹지축이 구축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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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7017 프로젝트’ 기본 계획. /자료=‘서울역 7017’ 홈페이지(http://www.ss7017.org/sub/introduce/summary.jsp) |
◆상공인들에게는 ‘대체도로’가 절실
그러나 논란도 존재한다. 남대문시장과 만리동 봉제공장의 상공인들은 고가도로가 폐쇄되는 것은 곧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역의 서부역까지 이어진 주택가엔 봉제공장 2000여개가 모여 있다. 이곳 상인들은 서울역 고가를 통해 만리동과 남대문시장을 오간다.
상공인들이 “서울역 고가도로의 대체도로 건설이 먼저 확실히 정해진 후에 공원화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들에게 서울역 고가도로는 ‘밥벌이’가 걸린 일터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들은 대체도로에 대한 어떤 확실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5월 “자신의 임기 말(2018년 6월)까지 대체도로를 완공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부지의 소유주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기존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추가로 북쪽에 대체고가도로를 설치하면 서울역의 경관과 가치를 해치고 부지 단절로 북부 역세권 개발계획의 공간 활용을 저해한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도로. 한국 근대 산업화의 산실이었지만, 그만큼 소외된 소시민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과거 산업화의 관행에 머물까, ‘포스트 산업화’를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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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 '서울역고가 시민개방행사'가 열린 지난 5월10일 서울역 고가도로 명동 진입로 인근 육교에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고가 공원화 등을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자료사진=뉴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