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오늘은 만기 적금을 찾는 날입니다. 오후 2시 KB국민은행 광화문지점으로 예약해 놓겠습니다.”
“주인님, 이번 달 신용카드 한도액이 10만원 남았습니다. 더 아껴 쓰세요.”
몇 년 후 우리 주변에선 이러한 풍경이 낯설지 않을 수 있다.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즉 컴퓨터 프로그램의 영역이 일상생활뿐 아니라 자산관리 시장에까지 넓혀지고 있어서다.
AI는 사전적 의미로 인간의 학습 및 추론, 지각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화한 기술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로봇 비서' 자비스로부터 헌신적인 도움을 받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제 우리의 현실도 스마트폰 비서나 손안에서 이뤄지는 집안살림, 애인 대행 능력을 갖춘 컴퓨터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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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국내 걸음마 단계… 빅데이터는 갈 길 멀어
주부 A씨는 평소 거래하던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로봇을 이용한 투자 상담을 권유 받았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에 관심이 없었지만 '체험하기'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스마트폰 앱(App)을 설치하자 총 5개의 질문이 나왔다. ▲투자하려는 자금의 출처는 무엇입니까 ▲투자금액은 얼마입니까 ▲목표 수익률은 몇 퍼센트(%)입니까 ▲앞으로 남은 투자기간은 몇 년입니까 ▲원금의 손실을 몇 % 수용할 수 있습니까.
꼼꼼하게 답안을 작성한 후 입력 완료를 누르니 '앞으로 24시간 시장을 모니터링한 뒤 고객님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해드립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달 후 계좌를 확인한 A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중국 주식과 금에 투자된 자산가치가 한 달 사이 2%나 올라 있었다.
나만의 로봇이 마치 비서처럼 자산관리를 해주는 일은 영화에서나 가능해 보이지만, 실제로 금융기업들은 이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국내의 경우 KDB대우증권,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등 대형 금융사들은 '로보 어드바이저'(Robo adviser) 시스템을 출시했거나 준비 중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투자자문을 뜻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다.
NH투자증권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출시했다. 고객의 투자 성향과 재무 목표에 따라 투자 대상 및 매매 전략을 짜도록 설계됐다. 정재우 NH투자증권 디지털고객본부장은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등 다양한 고객이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안에 투자 대상을 상장지수펀드(ETF)에서 펀드, 채권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ETF 1,2위 업체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자산을 자동으로 배분하거나 증권사·은행과 업무 제휴를 맺어 투자를 일임하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제 걸음마 단계인 만큼 갈 길이 멀고 앞서 빅데이터 기술을 도입한 것이 거의 실패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빅데이터는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의 이전 단계라 할 수 있는데, 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 등 대형사에서 이미 도입했다.
문제는 아직 국내 이용자들 입장에서 볼 때 필요성을 인식하는 수준이 낮다는 점이다. 앞서 빅데이터 서비스를 시작한 대형사들은 이용 실적 저조와 서비스 정체를 겪었다. 업계에서 비교적 적극적으로 빅데이터 서비스를 시작했던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용 실적이 적어 그 내용을 밝히기가 곤란하다. 성급하게 홍보한 측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김동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선진국에서는 빅데이터와 기계학습이 커다란 추세로 자리잡았다. 국내 금융투자업계도 새로운 투자 방법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계학습이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라 일컫는 빅데이터 기술이다. 예컨대 고객의 나이, 학력, 수입, 건강 등에 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해 투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장재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IT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선 AI 투자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경영자들이 당장 기술 개발이 어렵더라도 업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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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AI서비스 왓슨(Watson). /사진=뉴시스DB |
◆금융기업들, AI를 미래산업으로
세계 금융시장 간 장벽이 차츰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기업들은 우리와 달리 AI의 미래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직접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LG경제연구원 발표한 '진화하는 인공지능, 또 한번의 산업 혁명'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IBM은 이미 2011년 AI 시스템인 '왓슨'(Watson)을 개발했다. 왓슨은 인간의 언어로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컴퓨터이며 정보 수집과 지식 재현이 가능하다.
싱가포르 개발은행(DBS)은 이 왓슨을 이용해 우수 고객에게 맞춤형 투자자문 및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도 IBM 왓슨을 통해 투자자문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드뱅크(Ned Bank)의 경우 소셜미디어 분야에서 왓슨을 활용하려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금융과 IT 서비스를 융합한 핀테크(FinTech) 분야를 기반으로 머신러닝을 투자자문업에 도입했다. JP모건 자회사인 하이브리지캐피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등 유명 헤지펀드들은 머신러닝의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웰스프론트와 퍼스널캐피털은 로보 어드바이저를 도입했고, 찰스스왑이나 뱅가드 등 전통적인 금융기업들도 도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회사 AT커니는 관련 시장의 규모가 현재 200억달러 수준에서 앞으로 5년 후 약 2조달러(약 2332조원)까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