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은 제가 게임업에 종사한다고 하면 무척 부러워하는데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건 아니에요. 고해상 이미지와 그래픽을 보느라 지친 눈을 농사 지으며 힐링합니다.”
오전 9시= 대기업 A게임회사에 다니는 게임개발자 김재훈씨(31·가명)는 출근 후 팀원 3명과 회사 옥상으로 향한다. 옥상 밭에 심어놓은 수박과 방울토마토가 밤새 잘 자랐는지 확인하고 밭에 물을 뿌린다. 지난해 농사를 지었던 블루베리는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가지치기를 자주 하고 피트모스(전용흙)를 자주 갈아줘야 해 번거로웠지만 당도가 높고 과실이 큰 블루베리를 수확해 농사의 만족감을 느꼈다.
오전 10시30분= 옥상에서 내려온 김씨는 팀원들과 지하 1층 커피숍에서 티타임을 갖는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로 오가지만 스마트폰에 모바일게임을 켜놓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공유한다. 티타임이 길어지면 점심식사를 위해 회사 식당으로 이동한다.
이처럼 게임개발자들이 컴퓨터 밖의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개발자들에게 오는 ‘번아웃증후군’을 떨치기 위해서다. 이 증후군은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인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김씨는 “농사를 시작할 땐 ‘내가 게임회사에 취직해 왜 블루베리를 키우고 있을까’ 생각했지만 수확의 기쁨을 얻으면 기분이 너무 좋고 흙을 갈아주느라 허리를 자주 움직여서인지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 건강을 지킬 수 있다”며 “지금은 회사생활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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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점심식사 후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으면 김씨는 팀이 개발한 역할수행게임(RPG)에 접속한 유저의 수를 파악한다. 캐릭터가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RPG게임은 게임유저들이 스스로 아이템을 사고 게임환경을 개척하는 플레이패턴을 보인다.
유저들의 특정 아이템 구입이 늘어나면 가격을 할인해주고 패키지아이템을 따로 구성한다. 반대로 새롭게 출시한 아이템의 반응이 저조하면 게임개발자 1명, 프로그래머 2명, 아티스트 1명이 바로 팀을 구축해 즉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든다.
오후 3시= 김씨는 게임산업의 화두인 증강현실(VR) 게임기술을 직접 체험한다. 개발자는 RPG게임 캐릭터로 생각하고 VR기계를 낀 채 몇분 동안 게임을 한다. 김씨가 개발 중인 VR게임은 스마트폰을 낀 VR기계를 착용하고 블루투스 리모컨으로 캐릭터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캐릭터가 오른쪽으로 향하고 리모콘을 누르면 캐릭터가 걸어가면서 칼을 움직이거나 총을 발사한다.
오후 4시= 신규게임을 만들면 QA(품질보증)팀에서 최종 테스트한다. 이때 문제가 없으면 패치(오류, 장애를 고치는 작업)한 후 게임유저들에게 공개한다.
오후 6시= 김씨는 게임유저들의 반응을 본 후 신규아이템, 추후 스토리 구상을 위한 예비계획안을 만들어 놓고 퇴근길에 나선다.
김씨에게 VR게임은 게임의 생동감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체감형 콘텐츠다. 유저들이 캐릭터를 직접 움직이면서 주변의 가상현실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향후 계획도 세울 수 있다. 김씨는 앞으로 게임유저들이 VR게임에 푹 빠져 현실보다 가상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