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없이 심증처벌' 논란… 디젤대책에 집중해야

“19명이 같은 잘못을 했는데, 그 중 괘씸한 한명만 목을 베겠다는 거죠. 처벌의 근거는 ‘얘는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는 심증 하나뿐입니다.”

최근 환경부의 실도로 배출가스 점검과 그 대응에 대한 자동차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환경부는 지난 16일 국내 시판 중인 경유승용차 20종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한국닛산이 수입한 자동차 캐시카이에서 배출가스재순환장치(EGR)의 작동을 중단시키는 임의설정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엔진흡기온도 35℃ 이상에서 EGR이 작동하지 않도록 설정했다는 것.

이에 따라 환경부는 한국닛산에 임의설정 위반 사전통지를 하고 과징금 3억30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 캐시카이에 대해서는 인증취소와 함께 전량 리콜명령을 내리고, 인증 위반 혐의로 타케히코 키쿠치 한국닛산 사장을 검찰에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닛산에게는 열흘간의 의견진술기회를 줬다.

환경부 닛산 캐시카이,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진=뉴스1 DB
환경부 닛산 캐시카이,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진=뉴스1 DB

◆환경부의 ‘임의설정’ 판단
닛산 캐시카이에 대해 환경부가 ‘임의설정’ 판단을 내리자 자동차업계에서는 논란이 인다. 2014년 8월 환경부가 고시한 '제작차 인증 및 검사 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규정 2조19항'를 보면 "'임의설정'이란 일반적인 운전 및 사용조건에서 배출가스 시험모드와 다르게 배출가스관련부품의 기능을 저하되도록 그 부품의 기능을 정지, 지연, 변조하는 구성부품(온도, 차량속도, 엔진회전수, 변속기어, 매니폴드부압 등의 변수 감지를 통한 기능설정)을 말한다. 다만 장치의 목적이 ▲자동차의 안전한 운행 ▲엔진의 사고 또는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될 경우 ▲장치가 엔진 시동 조건 하에서 사용될 경우 ▲배출가스 시험모드에 실질적으로 포함됐을 경우는 임의설정으로 보지 않는다" 고 규정돼 있다.


닛산이 ‘의도적으로’ 실내인증에서만 EGR이 작동하도록 자동차를 설정했다는 것이 환경부의 주장인 셈이다. 다만 닛산은 이에 대해 같은 규정에 적시된 '엔진의 사고 또는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될 경우 임의설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문장을 근거로 예외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EGR을 멈추도록 한 것이 엔진손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캐시카이뿐 아니라 EGR을 사용하는 다른 디젤차 대부분이 일정한 온도 이상에서 EGR이 꺼지도록 설정됐다. 다만 값의 설정에 큰 차이가 있었다. 캐시카이의 EGR이 꺼지는 흡기온도는 35℃ 이상으로 설정됐고, 캐시카이를 제외한 다른 차량은 45~55℃에서 꺼지도록 해놨다. 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인증시간이 통상 20분이고, 캐시카이의 EGR 동작이 멈추는 건 20분 이후”라며 “그 시점의 값이 35℃여서 결국 임의설정을 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EGR이 꺼지는 시점이 과도하게 낮다는 지적에 대해 닛산의 해명은 다소 빈약하게 느껴진다. 금속이나 강화플라스틱을 이용한 다른 브랜드와 달리 흡기밸브를 고무재질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닛산 측의 해명이다.


그럼에도 35℃라는 셋팅값만을 가지고 명확한 근거없이 닛산의 ‘의도성’을 단언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제도적 기준을 적용할 때는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자의적인 판단으로 한국닛산에만 지나친 제재를 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게다가 한국닛산은 이 같은 사실을 지난해 12월 배출가스 인증시험 신청서에 이미 기재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환경부는 캐시카이의 EGR 작동조건을 알고 인증을 해주고도 뒤늦게 이를 문제 삼은 셈이다.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은 환경부의 발표가 나오자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조작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닛산은 한국정부가 캐시카이에 대해 리콜·판매금지를 한다면 법정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소모적인 법정다툼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이 디젤차 배기가스 시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이 디젤차 배기가스 시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 ‘디젤 폐해’ 본질에 집중해야
“환경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봤으면 좋겠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 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결국 800여대에 불과한 캐시카이에 집중된 처벌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의 이번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조사 대상이 된 20개 차종 중 BMW520d 단 한 차종만이 실도로 주행에서 실내인증기준에 부합한 수치를 나타냈을 뿐 나머지 19개 차량은 모두 실내인증기준을 몇배씩 초과하는 배출가스를 내뿜었다.

실내인증기준의 20.8배를 기록한 캐시카이 외에도 르노삼성 QM3 차량은 17.0배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으며 나머지 17개 차종은 실내 인증기준의 1.6~10.8배로 나타났다. 국내외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디젤차가 정부의 배출가스 규제와 상관없이 도로에서 질소산화물을 내뿜으며 달리는 상황인 셈이다.

김 교수는 특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폭스바겐 차량들을 지목했다. 그는 “질소산화물을 40배나 배출하는 폭스바겐 차량 12만대가 아무런 조치없이 도로를 활보하는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리콜문제라든지 소비자 보상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집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 최초로 캐시카이의 조작여부를 발견했다고 우기기보다는 실도로를 기준으로 한 배출가스 기준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것이 더 실효성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내년 9월부터 자동차 제조업체는 주행 중 배출 기준을 현행 실험실 실내 인증기준의 2.1배 이내로 맞춰야 하는데, 이를 앞당겨 적용하는 등 법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