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엔진오일을 비롯한 자동차용 화학제품들을 쉽게 살 수 있다. /사진=박찬규 기자
'폐기물' 기준도 없이 마구 팔리다니…
대형마트에서 파는 내연기관용 엔진오일. 자동차업계에선 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법상 대형마트에서 엔진오일을 판매하는 행위 자체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 처리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도 없고 위험성에 대한 안내도 부족하다. 꼼꼼히 따져보면 모호한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닌 데다 규정상 허점도 많아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얽히고 설킨 엔진오일 관련 법규… 병행수입도 문제
환경부에 따르면 엔진오일은 ‘소비자가 사용할 때 우려되는 제품 15가지’에 속하지 않는다. 엔진오일 성분에 따라 유해성 여부를 가리는데 보통은 문제되지 않는 성분인 데다 판매량이 적고 제품을 담은 용기도 소용량이어서 마트에서 판매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다.
엔진오일은 화학물질평가·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위험물안전관리법, 폐기물관리법, 자동차관리법 등 여러 법이 적용된다. 하지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 이해 당사자간 책임 떠넘기기가 가능한 점이 문제다.
먼저 물질 성분에 대한 위해성 논란은 SK루브리컨츠나 GS칼텍스 등 오일제조사 홈페이지에서 제품별 MSDS(화학물질정보)를 찾아 살펴보면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유해물질 함유량이 1% 미만일 경우 안전한 제품으로 볼 수 있어 위험안내도안과 문구를 빼도 된다. 제조사들에 따르면 대부분 엔진오일은 이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물질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은 화학물질의 성분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다른 관리기준을 내리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하지만 업체들은 엔진오일의 특성상 모든 성분과 비율을 공개하기 어렵다. 특히 합성유는 일반적으로 약 80%를 구성하는 베이스 오일(기유)과 20%쯤을 구성하는 첨가화합물로 구성된다. 기유는 직접 만들 수 있어도 나머지 첨가제는 수입에 의존하며 첨가제 배합과 비율은 영업기밀이다. 이를 공개할 경우 복제품을 만들라고 설계도를 공개하는 것과 같은 이치여서 성분을 파악하고 알리려는 화관법 취지와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병행수입을 늘리려는 정부의 움직임과도 맞지 않는다. 해외에서 완제품을 가져다 파는 경우 해당 제조사가 성분을 공개해야 하는데 공식 수입·판매권을 가진 업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병행수입업자는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고 병행수입제품의 진품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특정업체가 특정제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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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KIXX PAO 합성엔진오일 /사진=박찬규 기자 |
◆‘폐기’에 허점 드러낸 엔진오일
대형마트에서 엔진오일을 파는 행위가 안전과 취급 부분에선 문제가 없다 해도 사용과 폐기엔 여전히 허점이 남을 수밖에 없다.
환경부에 따르면 ‘폐유’는 지정폐기물로 분류된다. 따라서 카센터 등의 사업장에서 모은 폐유는 전문위탁업체가 수거와 처리를 담당하는 특별관리품목에 속한다. 위탁업체는 시세에 따라 폐유에 대한 비용을 지급한다. 폐유는 정제과정을 거쳐 산업연료 등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폐유를 가정에서 버릴 경우 생활폐기물로 분류되는데 엔진오일과 용기 등에 대한 정확한 폐기기준이 없다.(머니위크 4월20일 보도 '[단독] 자동차 엔진오일 집에서 교환하면 불법?' 참조) 자동차관리법상 개인이 가정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생활계 유해폐기물 관리대상 품목엔 엔진오일이 빠져있다.
오일 수입업체의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에서 엔진오일을 파는 건 불특정다수가 구매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며 “폐기물 처리에 대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환경오염 가능성을 방조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셀프정비족이 늘어나는 추세고 동호회 모임 때 폐기물을 그냥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입한 뒤 가정에서 교환할 경우에 대비한 안내문구는 제품용기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적힌 것도 다른 법규를 찾아보라는 식이다. 일반인이 폐기물 처리업 허가를 받은 자가 누군지 알 길이 없고 규정을 확인하니 또 다른 규정이 거론돼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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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 지크 X9. 엔진오일은 규격을 확인해야 한다 /사진=박찬규 기자 |
◆잘못된 사용으로 환경오염 일으킬 우려도 있어
제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규격에 맞지 않는 제품을 사용할 경우도 문제다. 단지 보충용으로 쓰더라도 길게 보면 자동차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요즘 디젤차들이 DPF필터를 달고 나오기 때문인데, 매연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 필터지만 규격에 맞지 않는 엔진오일을 쓰면 함유된 특정 성분 때문에 필터가 막힐 수 있어서다.
엔진오일 용기에 디젤차용이라고 쓰여있어도 DPF필터에 무리가 없는 규격인지 확인해야 한다. 가령 ACEA A3·B4 규격은 DPF필터가 장착된 차종에 쓰면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있다. 필터에 문제가 생기면 연비가 떨어지고 배출가스도 걸러지지 않는다. 유로5나 유로6를 만족하는 최신 차종은 C3급 이상 규격을 써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해당 내용을 관할하는 환경부와 업체들을 대변하고 정부와 규제 조율을 맡는 엔진오일공업협회에선 “문제될 것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환경부는 부서별 담당내용이 다르다보니 담당자들의 의견을 한데 모으기 어려워 보인다. 취재과정에서도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답변을 피했다.
협회는 제조사 홈페이지에 사용법이 나왔다며 사용자 탓을 했다. 제조사는 법규에 맞춰서 제품을 내놨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이유로 대형마트에선 자동차 관련 화학제품 사용법과 폐기에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자동차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판매 중인 일부 제품의 경우 라벨을 여러장으로 만들어 제품 사용법과 폐기법을 안내하고 있다”면서 “정부부처와 협회, 제조사, 유통채널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무언가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사자들이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고 환경오염도 심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폐기기준이 없으니 판매기준도 없는 것”이라며 “올바른 제품사용으로 자동차 배출가스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