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은행장 연임’이라는 공식이 붙은 은행이 있다. 4전5기 민영화 작업에 나선 우리은행이다. 올해 말 임기만료를 앞둔 이광구 행장은 은행의 민영화 여부에 따라 연임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은 8~9월쯤 우리은행의 매각공고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 2개월가량 매각절차를 거치면 10~11월쯤 새로운 주인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 행장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연말에 은행의 민영화가 결정되는 셈이다. 취임 당시 이 행장은 은행의 민영화를 목표로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앞당겼다. 따라서 민영화가 이뤄지면 사실상 연임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우리은행 민영화를 둘러싼 분위기가 밝아졌다. 이 행장이 지난 2월 싱가포르와 유럽, 5월 미국에 이어 일본까지 숨 가쁘게 다닌 결과 우리은행의 주가는 올 초 8000원대에서 6월 초 1만원대 가까이로 올랐다. 외국인투자자의 지분은 20%에서 24%로 4%포인트 늘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제공=우리은행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제공=우리은행

금융당국도 어느 때보다 우리은행의 민영화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 최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시장의 플레이어를 민간에게 돌려주는 일은 금융개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민영화를 달성해 우리은행을 좀 더 나은 은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물론 민영화가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우리은행은 시중은행 중 유일한 정부소유 은행으로 이미 4차례나 매각이 불발된 트라우마가 있다. 지난해 7월엔 4~10%씩 지분을 쪼개 파는 과점주주 매각으로 방식을 변경했으나 매각공고가 미뤄진 상태다.

결국 정부의 매각공고에 이 행장의 연임이 달려있는 셈. 정부가 매각공고를 내년으로 미루면 해외투자자를 직접 찾아다녔던 이 행장의 수고는 빛을 보지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간다.

◆안방보험 인수 의향… 외국자본 안되나


우리은행 민영화의 키를 쥔 정부는 우리은행의 바람과 달리 희망 매각가를 제시하는 수요자가 나타나면 매각계획을 공식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외국자본의 국내은행 인수에 난색을 표해 국내투자자가 등장할 때까지 우리은행 매각공고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증권망에 따르면 중국 안방보험이 우리은행의 지분 약 10%를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우리 정부 측에 전달했다. 지분 10%는 경영권 포섭과 거리가 먼 규모로 수익률과 장기적 포석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해외자본인 안방보험에 국내 은행의 지분인수를 허가할지가 관건인데 최근 분위기는 어렵게 흘러간다.

중국 보험업계 3위인 안방보험은 동양생명과 알리안츠생명을 인수한 데 이어 우리은행의 주요주주에도 관심을 기울여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다만 안방보험의 지배구조가 베일에 싸여있고 자금출처가 불투명하다는 의혹을 받는 점, 최근 알리안츠생명을 35억원에 인수하면서 ‘헐값매각’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은 점 등은 안방보험이 우리은행 지분을 사들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에 이어 일본투자자 역시 우리은행 투자에 큰 관심을 보인다. 일본은 사상 최저금리인 마이너스 0.170%를 기록 중인데 일본 연기금은 수익확보를 위해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다. 우리은행이 안정적인 수익을 거뒀고 매년 고배당을 실시하는 만큼 일본 연기금으로선 안성맞춤인 투자처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안방보험 외에도 다수의 해외자본 인수 후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은행의 해외자본 인수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그러나 외국자본에 우리나라 토종은행의 지분을 파는 것이 국민정서상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커스] 해외보폭 넓힌 우리은행장, 연임은?

◆예보, 경영 자율성 얼마나 열어줄까
우리은행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경영의 자율성을 얼마나 열어줄지도 우리은행이 민영화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전망이다.

예보는 우리은행의 매각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분 30% 매각에 성공하면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하는 양해각서 체결을 검토 중이다. 다수의 주주가 과점주주 방식으로 최소 4%에서 최대 10%까지 총 30%의 지분을 사들이면 우리은행 경영권에 자유를 주겠다는 것. 특히 이사선임 권한까지 부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경영 참여 메리트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은행은 예보와 맺은 경영정상화 이행약정에 따라 자기자본순이익률(ROE), 총자산순이익률(ROA), 순고정이하여신비율 등을 일정수준 이상 또는 이하로 맞춰야 한다. 은행의 주요 인사권한도 예보가 갖고 있다. 우리은행이 30%의 지분을 매각해도 21%의 지분을 예보가 보유해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행사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소수지분을 인수하려는 투자자가 나타나면 은행의 자율성을 확대할 수 있도록 예보가 경영일선에서 최대한 물러서는 협약을 체결할 것”이라며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는 투자자에게 우리은행의 매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행장후보추천위원회는(행추위)는 이 행장 임기만료 한달 전인 11월 말 열린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조만간 또다시 수장을 맞이할 채비에 나서야 한다. 은행의 민영화와 함께한 이 행장과 민영화 적기를 맞은 우리은행이 다시한번 새로운 전환점에 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