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대모’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난 7일 구속됐다. 재계의 시선은 신 이사장의 구속이 롯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모아졌다.
일단 검찰은 유리해졌다. 수많은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신 이사장은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신 이사장은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 롯데건설, 롯데복지재단, 롯데장학재단 등 롯데의 여러 계열사와 연관돼 있다. 검찰은 신 이사장을 통해 롯데 계열사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여러 정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롯데는 바빠졌다. 신 이사장의 구속으로 오너일가의 줄소환 가능성이 커졌다. 소환 1순위인 신동빈 회장은 칩거하며 검찰 수사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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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DB |
◆신영자의 ‘눈물’… 움찔하는 롯데
검찰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지난 6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던 중 억울함을 토로하다가 울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신 이사장은 오후 1시30분께 심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법정을 떠났다.
신 이사장은 네이처리퍼블릭 등 롯데면세점 입점 업체로부터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30억원을 받고, 아들이 소유한 명품 수입·유통업체 B사의 회삿돈 4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혐의가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신 이사장은 무엇이 억울해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신동빈 회장은 이달 초 귀국 후 신 이사장의 비리 혐의에 대해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는 롯데 측이 신 이사장을 ‘대형 희생양’으로 삼고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마시키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신 이사장이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신 회장 입장에서는 신 이사장 구속을 개인적인 비리로 보고 롯데그룹과의 연관성에 선을 긋는 작업을 하는 듯하다”면서 “신 이사장 구속이 롯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전반적인 도덕성 문제로 확대되면 향후 그룹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이사장 입장에서는 억울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신 회장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신 이사장은 ‘형제의 난’에서 신 회장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올초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심판청구에서도 신 회장과 뜻을 함께했다. 올해 3월 말 열린 일본 도쿄 롯데면세점 오픈식에도 신 회장과 나란히 참석할 만큼 지지의사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신 회장 측의 '선긋기 작업'에 서운한 감정을 느꼈을 수 있다.
실제 신 이사장은 지금까지 검찰 수사에서 롯데그룹 측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롯데가 국내 주요 로펌의 변호사 수십여명을 포함한 드림팀을 구성해 대응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 이사장이 롯데그룹에 대한 의혹들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줄 단서를 검찰에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롯데그룹은 신 이사장에 대한 질문에 ‘수사 중이라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지만 신 이사장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그룹 내부 의혹과 관계된 발언을 할 경우 적지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오너일가 줄줄이 소환 ‘초읽기’
신 이사장의 구속으로 롯데 오너일가에 대한 검찰 소환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롯데 오너일가들이 검찰에 모두 모이는 진풍경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달 초 귀국한 신 회장은 소환대상 1순위다. 검찰은 신 회장이 관련자들로부터 부외자금 200억원을 운용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만큼 소환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의 검찰 소환을 이달 말로 예상한다.
베일에 싸인 서미경씨와 그의 딸 신유미씨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현재 서씨와 신 고문이 지분 100%를 가진 유원실업, 유기개발, 유니플렉스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상태다. 유기개발은 롯데백화점 식당가에서의 요식업체 운영과 부동산 임대업을 전개하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도 검찰수사 대상이다. 신 전 회장은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들에 오랜 기간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따라서 신 부회장은 한일 롯데 계열사 간의 거래와 관련해 집중 추궁당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그룹 이미지 타격… 신동빈의 선택은
신 이사장의 구속으로 롯데 오너일가는 물론, 계열사 주요 인사들의 소환이나 구속 행렬이 잇따를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롯데그룹은 사업과 그룹 이미지에 모두 큰 타격을 입었다.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인 장정숙 의원은 지난 4일 국회에서 “롯데는 박정희의 롯데쇼핑센터 허가부터 전두환의 잠실 롯데월드 허가, 그리고 MB의 공군 참모총장 경질 후 현 롯데타워 허가까지 역대 보수정권이 쌓아올린 비리의혹의 백화점”이라고 지적하며 롯데 의혹에 대한 철저수사를 촉구했다.
현재 신동빈 회장은 귀국 후 대외활동을 최대한 자제한 채 집무실에서 칩거 중이다. 신 이사장의 구속이 확정돼 두문불출한 행보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굳이 불필요한 대외활동으로 잡음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앞으로 신동빈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고 만약 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신 이사장 구속 때와는 차원이 다른 후폭풍이 불어닥칠 수 있다”면서 “신 회장은 집무실에서 핵심 3인방인 소진세 대외협력단장, 황각규 롯데정책본부 사장, 이인원 부회장과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