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자료사진=머니위크DB
한국거래소. /자료사진=머니위크DB
지난 5일 시행된 공매도 공시제로 금융투자업계에 희비가 엇갈렸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개인투자자들은 "투기 목적의 공매도가 억제될 것"이라며 환영한 반면 공매도를 주요 전략으로 써온 헤지펀드 운용사들은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인적사항 공시 의무화… 기관투자자에겐 부담

한국거래소는 공시제 시행을 앞둔 지난달 30일 코스피·코스닥시장 전체 거래대금에서 공매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2.70%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날 코스피시장의 공매도 비율은 올해 1월 전체 거래대금 대비 공매도 비중(7.33%)의 절반 수준이었고 지난달 평균(5.39%)보다도 많이 낮은 수치였다. 또 지난달 1일 51조원이었던 공매도 대차잔고는 지난 4일 48조3000억원으로 2조7000억원 감소했다.


공매도 공시제 시행으로 상장사 시가총액 대비 공매도 잔액 비율이 0.5%를 넘긴 투자자는 당일(공시의무 발생일)로부터 3거래일이 지난 뒤 ▲종목명 ▲이름 ▲생년월일 ▲사업자등록번호 ▲국적 등 인적사항을 공시해야 한다. 추가 거래가 없어도 일별 공매도 잔고 비율이 0.5% 이상을 유지하면 매일 공시의무가 발생한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해당 투자자 정보는 한국거래소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백찬규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첫 공시는 의무 발생일인 지난달 30일부터 3거래일 후인 지난 5일 이뤄졌지만 인적정보 공개 등을 부담스러워한 기관투자자들은 미리 공매도를 줄였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노출 우려… 전략 수정 불가피

'없는 것을 판다'는 뜻의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가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같은 종목을 하락한 값에 사들여 되갚는 투자방식이다. 주식을 판 뒤 결제일이 3일 뒤에 돌아오는 점을 이용한다. 주가가 많이 떨어질수록 차익을 크게 볼 수 있다. 특히 상승 예상 종목을 사고 하락 예상 종목을 공매도하는 방법(롱숏전략)으로 상승·하락장 모두에서 수익을 좇는 헤지펀드에서 주로 활용된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증시가 장기간 박스권에 머물면서 공매도가 투자대안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실제 2010년 31조5565억원이던 코스피시장의 공매도 거래금액은 지난해 73조3461억원으로 두배 넘게 급증했다.

하지만 공매도 공시제 시행 이후 상황은 급변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공매도 잔액을 공시하면 투자 포트폴리오 노출 우려가 크고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의 민원 등으로 정상 업무를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운용전략 수정도 불가피하다. 지난달 운용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긴 국내 헤지펀드는 보통 순자산의 3~5%를 공매도로 쓴다. 펀드 규모가 3000억원이면 최대 150억원을 공매도한다는 뜻이다. 이 금액을 한 종목에 투자한다고 할 때 공시기준을 피하려면 시가총액이 3조원을 넘겨야 한다.

지난 1일 기준 코스피 상장기업의 7.9%와 코스닥 상장기업의 0.3%만 여기에 해당된다. 그만큼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진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선 3~4개 운용사가 3000억원 이상의 헤지펀드를 굴린다"며 "대형주 위주로 운용하거나 공매도 금액을 낮추는 등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시가총액 3000억원 이하의 중·소형주는 공매도를 15억원만 하더라도 공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형 자산운용사에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공매도 공시제, 허점은 있다… '스와프 거래'

공매도 공시제로 모든 운용사가 울상인 것은 아니다. 외국계 운용사 입장에서는 전략 노출이라는 리스크를 피할 '가림막'이 존재한다.

투자 포트폴리오 전략이 생명과도 같은 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로선 스와프 계약이 공시로 인한 전략 노출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금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외국 헤지펀드들은 숏(공매도)으로 차익을 내면 해당 국가에 따로 세금을 내야 한다"며 "숏을 하든 스와프를 하든 세금 규모는 비슷해 공시도 피할 겸 한국에선 당연히 스와프 거래를 활용한 공매도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숏도 주식 거래와 같은 것으로 보고 세금을 따로 부과하지 않지만 스와프에 대해선 양도세를 별도로 내야 하므로 국내 헤지펀드의 경우 스와프 거래가 빈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공매도 공시제 도입은 누가 공매도를 하느냐를 확인하기 위함이 크다. 그러나 이를 들추기 위해 공매도의 스와프 거래량까지 산출해내기란 쉽지 않다. 이에 증권사 관계자는 "결국 국내 투자자들만 자기 패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