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을 잃었던 투자금이 빠르게 움직인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 달러화,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상황. 시장의 위험이 커지면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다.
◆금값, 당분간 더 오를 듯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파가 키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심화되면서 투자자의 관심이 금 관련 상품으로 쏠렸다. 금은 최근 전세계 자산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호황기로 접어든 자산이다. 오래전부터 화폐로 사용된 데다가 현재도 기축통화와 함께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분류된다. 또한 실물자산으로의 가치가 뛰어나 안전성이 더욱 부각된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0.6% 오른 온스당 1343.60달러로 마감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1100달러대 초반에서 움직인 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 게다가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당분간 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특히 금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일부 금펀드는 최근 6개월 동안 10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기록해 눈길을 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금광업 관련 국내외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인 ‘블랙록월드골드’는 최근 6개월 수익률이 94.26%에 달한다. ‘IBK골드마이닝’ 역시 같은 기간 8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 펀드의 3년 수익률은 –40% 수준이었으나 반년 만에 성과를 끌어 올렸다. 현재 3년 수익률은 50%를 넘어섰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금은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 저금리, 달러 약세 기대감에도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며 “금 투자는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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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X금시장 골드바. /사진제공=한국거래소 |
◆연말까지 달러 강세 전망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달러화로 자산을 지키려는 투자자들도 늘었다. 브렉시트가 일단락됐지만 유럽연합(EU) 내 탈퇴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U 정상들 간 미팅이 오는 9월 예정돼 최소한 이때까지는 안전자산 선호심리 영향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올해 한차례 더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인상도 달러화 강세를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문남중 대신증권 스트래티지스트는 “브렉시트로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시점이 3분기 말로 지연되겠지만 연내 한차례 금리인상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연말로 갈수록 달러화는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자들이 달러화로 몰리면서 역외펀드도 주목받는다. 역외펀드는 해외에 등록된 펀드로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펀드 기준가도 원화가 아닌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해외 통화로 표시된다. 국내에서 설정돼 해외에 투자하는 역내펀드와 달리 판매보수가 없고 환차익에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역외펀드는 이달 안에 설정액이 1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월 말 기준 역외펀드 설정액은 9091억원에 달했다. 앞서 지난 3월 말 8160억원, 4월 말 8341억원에 이어 꾸준히 증가세다.
역외펀드는 자산을 분산한다는 측면에서의 안정성과 수익률을 동시에 추구한다. 대표적인 역외펀드인 ‘피델리티미달러채권’은 연초 이후 6.1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주요 역외펀드는 연초 이후 6~11%의 우수한 성적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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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
◆채권형펀드와 ETF ‘주목’
국내 투자자들이 브렉시트 확정 이후 안정적인 채권형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로 관심을 돌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2일 현재까지 500억원 이상 뭉칫돈이 들어온 펀드 상위권 대부분은 채권형펀드와 ETF다.
먼저 채권형펀드의 경우 국내보다는 해외가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펀드평가사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해외 채권형펀드에는 올해 초부터 지난 12일까지 4203억원이 몰렸다. 전체 설정액 5조3896억원 가운데 7.8%가 올해 유입된 규모다.
해외 채권형펀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브렉시트 결정 이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올해 한차례 인상이 예고됐지만 당장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채권형펀드의 자산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기대에 투자심리가 스며든 것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채권 가격은 기준금리 인하 시 오른다.
성태경 미래에셋자산운용 리테일마케팅부문 상무는 “글로벌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채권형펀드로 자금흐름이 강화됐다”며 “실제 브렉시트 확정 이후 국내외 현재까지 채권형펀드로만 1조5810억원이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수익률도 주목할 만하다. 해외 채권형펀드는 연초 이후 5.6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해외 주식형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6.45%로 해외 채권형펀드에 크게 못 미쳤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로 해외 채권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당분간 해외 채권형펀드의 성과가 양호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TF로 발길을 돌리는 투자자들도 보인다. ETF는 ‘단타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주로 선택한다. 그러나 증시 변동성이 클 때는 주식 이외의 자산을 사들여 자산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 금이나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과 연계한 ETF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 참의원선거와 오는 11월 열릴 미국 대선, 내년 독일과 프랑스 선거 등 정치 변수가 많은 시점인 만큼 주식 연계 ETF만으론 낭패를 볼 가능성이 존재한다.
심재환 한국투자신탁운용 베타운용본부 ETF부문장은 “ETF는 한 상품에 투자해 국가 전체, 시장 전체, 산업 전체를 살 수 있다”며 “국내 투자자들은 레버리지 등 단기 투자 도구로 ETF를 생각하지만 사실 이 상품의 본질은 장기 자산배분”이라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