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위기에 빠진 그룹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룹 총수로 올라선 이후 사실상 첫 성적표에 해당하는 올 2분기 실적에서 주요 계열사의 이익을 일제히 끌어올린 것. 지난해 1조7000억원대 순손실을 기록하며 최대 위기를 맞았던 두산그룹은 박정원 체제 아래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31년 동안 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쳐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준비된 리더’의 진가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2분기 실적 대폭 개선

지난 7월18일 두산그룹은 ㈜두산,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의 2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우선 지주회사인 ㈜두산은 2분기 매출액 4조2513억원, 영업이익 3062억원, 당기순이익 181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3.2%, 767.8% 늘었다.


지난해 유동성 위기를 겪은 두산인프라코어는 매출액 1조6183억원, 영업이익 1734억원, 당기순이익 223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액은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126.9%↑)과 당기순이익(2246.5%↑)이 크게 증가했다.

두산중공업은 매출액 3조5984억원, 영업이익 2623억원, 당기순이익 125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3.67%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57.98%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두산건설도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3113억원, 7.2%↑)과 영업이익(103억원, 515.6%↑)이 대폭 증가했다.

여기에 두산이 2007년 인수한 글로벌 소형 건설장비업체 밥캣도 최근 성과를 내고 있다. 인수 이듬해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2년간 조단위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북미지역의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서 매출 4조408억원, 영업이익 3856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올해 2분기에도 매출 1조1135억원, 영업이익 1491억원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사진제공=두산그룹
/사진제공=두산그룹

◆‘구조조정+준비된 리더’ 시너지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 빠르게 재계서열 10위의 위상을 되찾은 원동력으로 ‘선제적 구조조정’과 ‘준비된 리더’의 시너지를 꼽는다. 지난해 주요 계열사들이 글로벌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일제히 천문학적 손실을 기록한 가운데 두산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 등 대대적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박 회장은 ‘박승직 창업주→박두병 초대 회장→박용곤·박용오·박용만 회장 시대’를 거쳐 오너 4세대로는 처음으로 그룹 총수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31년간 ▲동양맥주 ▲오비맥주 ▲두산산업개발 ▲두산건설 ▲두산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2012년 ㈜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으면서 두산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을 실질적을 이끌었으며 그룹의 미래먹거리인 연료전지(2014년)와 면세점(2015년) 사업 진출에도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외부 노출이 많지 않은 은둔형 경영자에 가깝지만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경영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간 두산그룹의 굵직한 M&A에 핵심 인사로 참여하면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박 회장이 단기간에 실적 반등을 이뤄낸 것은 준비된 경영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오랜 기간 경영능력을 키워온 만큼 일시적 반등이 아닌 지속적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0월 이후 진짜 시험대

다만 아직까지 별다른 재미를 못 본 면세점사업은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문을 연 두타면세점은 하루 매출이 4억원 수준이다. 이는 앞서 문을 연 신라아이파크면세점(11억원), 갤러리아면세점63(6억원) 등에 못 미친다.

심지어 중소면세점으로 분류되는 SM면세점(4억5000만원)보다 매출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는 제품 구색이 완벽하지 않은 미완의 면세점이라는 변명거리가 있지만 그랜드 오픈이 예정된 10월까지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주요 명품 라인업과 차별화된 콘텐츠 등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패한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오는 10월로 예상되는 두산밥캣의 유가증권시장 상장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두산밥캣의 상장이 완료되면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또한 상장자금 등을 활용해 지난해 말 기준 11조원에 이르는 차입금을 8조원대로 낮추며 재무구조 개선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IB업계에선 두산밥캣이 상장될 경우 시가총액이 3조~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기업 슬로건에 어울리지 않게 인력구조조정 과정에서 20대 희망퇴직, 면벽 근무 등을 실시한 것이 드러나며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재계 한 인사는 “2분기 호실적은 전임 회장 시절 계획된 구조조정의 영향력이 상당히 컸다”며 “재무구조 개선이 완료된 이후 진짜 박 회장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필
▲1962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보스턴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동양맥주 이사 ▲오비맥주 상무 ▲두산 대표이사 부사장 ▲두산 대표이사 사장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두산 부회장 ▲두산건설 회장 ▲두산 베어스 구단주 ▲두산 회장 ▲두산그룹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