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당시부터 무용론… 독립성 강화대책 마련해야

오너 경영체제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 기업환경에서 사외이사제도는 경영권의 투명성 확보와 대주주 견제를 위한 핵심제도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도입 당시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사외이사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최근에는 사외이사제도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제도개선 작업이 추진 중인 가운데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한 사외이사의 두 얼굴을 살펴봤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오른쪽)이 지난 6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기업사외이사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오른쪽)이 지난 6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기업사외이사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유명무실’ 사외이사제도

“최대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은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해 보다 중립적인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 상장사 및 계열사의 임직원이었던 자 등 독립·감시기능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한 결격 요건을 확대하고,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 각 1인 또는 복수의 후보자를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에 추천할 수 있게 한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달 초 의원 122명의 동의를 얻어 대표발의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중 일부 내용이다. 해당 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선임절차 분리 등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함께 담겼다. 국회 의석수 비율이 40.33%에 이르는 거대 야당이 사실상 당론으로 발의한 법안인 만큼 통과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사회적 파장이 만만찮다.


이 중에서도 사외이사제도는 개선이 시급한 제도로 손꼽힌다. 1998년 도입된 사외이사제도는 당초 목적대로만 운영됐다면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서 대주주(오너)의 전횡을 방지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상태를 감독 및 조언하는 역할을 해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치권 인사와 관료들의 퇴직 후 재취업 자리나 경영진의 방패막이로 변질된 경우가 많다.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주요 권력기관(사법부, 금융감독원, 청와대 등) 출신 사외이사 비중은 44.6%에 이른다. 이는 사외이사가 본연의 역할보다는 각 그룹의 대관업무 필요성을 반영해 선임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법조비리의 핵심인물로 구속기소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이수그룹 주요 계열사인 이수페타시스(2011.11~2014.11), 범LG가 기업 레드캡투어(2015.3~2016.6), LG전자(2015.3~2016.5) 등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억대에 가까운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정보공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대기업집단 소속 상장사 239개의 이사회 안건 5448건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13건(0.24%)에 불과했다.

이처럼 사외이사제도가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 근본적 이유는 임명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는 회사와 직·간접적인 이해관계, 최대주주 등과의 특수관계, 과거 해당회사나 계열사에 재직한 경력 등 관리감독 역할을 하기에 부적격한 사람을 배제하고 뽑는 것이 원칙이다. 


여러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한 홍만표 변호사(왼쪽 2번째)가 지난 6월 법조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기소돼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DB
여러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한 홍만표 변호사(왼쪽 2번째)가 지난 6월 법조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기소돼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DB

◆독립성 확보 어려운 구조

그러나 사외이사 선정 과정에서 재벌 오너나 CEO(최고경영자)의 입김이 들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애초부터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에 경영진이나 오너가 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외이사제도의 취지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이라며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으로 대주주를 제외하고 소수주주들에게 추천권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은 지난 4월 237개사의 정기주주총회 안건 1675건을 분석한 결과 211개사가 제출한 949건의 임원 선임 안건 중 244건인 25.7%에 대해 특수관계, 장기연임, 낮은 출석률 등의 부적격 사유를 발견해 반대 권고를 하기도 했다.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기업의 존립을 흔드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총수가 사망한 뒤 경영경험이 거의 없는 총수 부인이 경영권을 넘겨 받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경우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이사회에서 처리한 안건은 각각 275건과 243건이다.

경영권자의 경험이 부족한 만큼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했지만 이들은 이사회에서 단 한번의 반대 의견도 내지 않았다. 경영진의 감시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사이 기업은 망가졌고 현재는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사외이사가 침묵한 대가는 적지 않았다. 한진해운 사외이사의 지난해 평균 보수는 5800만원으로 회의 참석 한번에 600만원 이상을 챙겼다. 현대상선의 경우 2005년부터 매년 한차례가량 이사회에 참석한 에릭 싱 치 입 허치슨포트홀딩스 사장은 올해 재선임되며 무려 14년간 사외이사로 재직하게 됐다. 

사외이사가 한 기업에서 오래 근무할 경우 경영진과 유착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크지만 30대 그룹 중 올해 재선임돼 6년 이상 재직하는 사외이사 수는 LG 11명, 현대자동차 8명, SK·CJ 6명 등 총 60여명에 이른다.

경제개혁연구소 관계자는 “사외이사 무용론이 꾸준히 제기되지만 사외이사제도를 폐지할 경우 지배주주, 경영진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어진다는 문제가 있다”며 “사외이사제도 폐기를 논의하기보다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방안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외이사 자격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회 위원의 분리선출, 사외이사에 대한 정보공개 및 사후 책임강화 등 다양한 개선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