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안 발표로 증권업계가 들썩인다. 정부는 은행만 가능했던 업무를 증권사에 소폭 허용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이 육성안을 내놨다. 초대형 IB 기준은 당초 예상됐던 자기자본 5조원이 아닌 3조원, 4조원, 8조원으로 나뉘었다. 이에 따라 자본확충을 위한 증권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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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투자은행 육성을 위한 종합 금융투자 사업자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는 김태현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사진=뉴스1 황기선 기자 |
◆3조·4조·8조… 규모별 차등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자기자본 3조·4조·8조원 이상 증권사의 허용업무를 각 단계별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증권사들의 자금조달을 더 원활하게 해주는 동시에 사업영역을 확장해 장래에 자본금 10조원이 넘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우선 자기자본 3조원이 넘는 증권사에는 기업금융업무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영업용순자본비율(NCR-II)을 적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만기가 긴 대출자산을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영업용순자본에서 차감했기 때문에 NCR비율이 크게 하락했다. 하지만 NCR-II는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자산의 일부를 영업용순자본에서 차감함에 따라 건전성 부담이 완화된다.
또 신용공여 한도도 확대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모든 신용공여를 합산해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에서는 기업 신용공여를 따로 분류해 자기자본 100%까지 허용한다. 아울러 다자간 비상장주식 매매·중개업무를 추가하고 정책금융기관, 국부펀드, 성장사다리펀드 등을 활용해 해외진출도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금융위는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증권사에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조달 창구를 열어줬다. 절차가 상대적으로 간편한 1년 이내의 어음을 발행해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을 수 있게 한 것. 발행어음은 자기자본의 200% 이내까지 가능하다. 어음발행분은 레버리지 규제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최소 50% 이상을 기업금융에 써야 하는 의무비율을 두기로 했다. 또 기업고객과의 현물환 매매업무를 허용해 기업금융 관련 외국환업무를 확대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자기자본 8조원 이상인 증권사에는 종합금융투자계좌(IMA) 업무를 허용할 방침이다. IMA는 고객에게 받은 예수금을 투자한 후 사전약정에 따라 수익금을 돌려주는 계좌다. 예금자보호가 안되는 대신 증권사가 원금지급의무를 진다. IMA로 조달한 자금도 증권사의 레버리지 규제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발행어음처럼 기업금융 의무비율이 붙는다. 또 현재 은행에만 제한적으로 겸업이 허용된 부동산담보신탁업무를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증권사에도 허용하기로 했다.
◆업계, ‘기대’ vs ‘우려’… 의견 갈려
금융위가 발표한 초대형 IB 육성방안을 놓고 증권가의 시각은 엇갈린다. 우선 금융투자협회와 대형증권사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번 IB 육성방안은 증권업계가 고대하며 기다려온 조치”라며 “그동안 잠자던 업계의 야성적 충동과 무한경쟁을 깨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환영의사를 밝혔다.
NH투자증권은 “최근 핀테크 등 리테일 중심의 정책에서 기업금융 활성화와 균형을 맞춘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에서 증권사가 한국 경제에 모험자본 공급 등을 원활하게 추진함과 동시에 업계의 새로운 성장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사무금융노조와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의 거대 IB가 관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의견과 실제 적용되는 제도가 초대형 IB 육성에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것.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금융위의 초대형IB 육성방안 발표 후 성명서를 내고 “외국의 투자은행 대형화는 오래전부터 자본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레 발전한 것이지 한국처럼 육성정책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며 “이번 방안은 증권사간 차별을 조장해 중소증권사의 몰락을 초래하고 자본시장의 혼란과 대량실직을 양산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박혜진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만기 1년 이내의 어음발행은 현재 대부분 증권사가 전단채를 활용하고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사는 2% 초반대의 채권발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다만 허용된 신규업무 중 부동산 담보신탁 및 다자간 비상장주식 매매·중개업무는 확실한 추가 수수료수익 확보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자본확충 위한 ‘지각변동’ 주목
이번 초대형 IB 육성방안으로 직접 수혜를 입는 증권사는 통합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통합 KB투자증권 등으로 전망된다. 지난 1분기 말 기준으로 미래에셋은 자기자본이 6조7000억원, NH는 4조5000억원, KB는 3조8000억원 수준이다. KB도 이익잉여금 증대를 통해 연말에는 자기자본 4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지위를 가진 증권사 중 자기자본 4조원을 넘지 못하는 곳은 삼성증권(3조4000억원), 한국투자증권(3조2000억원), 증자 후 3조원을 넘는 신한금융투자 등이다. 업계는 통합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새로운 단계별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유상증자나 인수합병(M&A)을 고려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왔거나 잠재적 매물로 거론되는 하이투자증권, SK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등이 주목받는다. 자기자본 7000억원 규모인 하이투자증권을 삼성이나 한투가 인수하면 단숨에 자기자본 4조원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증권업계 관계자는 하이투자증권의 경우 인수메리트가 없어 흥행이 안됐던 만큼 대형사들이 증자와 M&A 사이에서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 애널리스트는 “경쟁심화에도 그동안 증권업의 자발적 M&A가 저조했던 이유는 매몰비용과 실적의 변동성 때문”이라며 “이번에 발표된 초대형 IB 육성방안은 증권사의 자본확충을 고려할 동인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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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